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일상문화 안내서

01. 만나면 인사하는 사이

권진영

남해 귀촌 1년차


동네

남해 두모마을

"인사라는 것이 이렇게 반가운 일이었던가.
오랫동안 그 단순한 마음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남해의 명산 금산 아래, 오래된 촌집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남해의 명산 금산 아래, 오래된 촌집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사람이 생겼다. 높이 솟은 금산의 산등성이 아래, 바다를 향해 길게 늘어선 남해의 어느 작고 한적한 마을, 이곳으로 이주한 뒤 나에게 생긴 변화 중 하나이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겨우 100명, 69가구. 인구 밀도 높은 대도시에 비해선 아주 작은 동네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을에 사는 모든 이들을 다 알고 지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이든지간에, 빠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그 짧은 한마디에 반가운 마음은 한가득 담아서.


 인사라는 것이 이렇게 반가운 일이었던가. 오랫동안 그 단순한 마음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서울, 10년 넘게 내가 살았던 도시. 나의 20대를 보내며, 수많은 시작과 끝맺음을 차곡차곡 쌓았던 도시. 사람이 많고 많은 그 도시에선 굳이 인사가 필요하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관계들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그저 길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할 사람은 쉬이 만날 수 없었다. 필요하지 않은 인사를 주고받는 일은 스스로 사양하며 나의 안전지대를 사수했고, 어쩌다 한번쯤 길에서 새삼스레 누군가의 인사를 받으면, 경계심부터 삐죽 들었다. 낯선 이의 인사에는 민첩하게 반응해야했다. 인사 뒤에 숨은 의도를 간파하기 위해 눈을 빠르게 굴리든가, 못 들은 척 하고서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하거나.


바다로 가는길. 길을 가다 이웃을 마주치는 일이 많진 않다. 특히 농사일이 많지 않은 농한기면 마을을 걷다 길 위에서 이웃을 만나는 일은 더 드물어진다.
바다로 가는길. 길을 가다 이웃을 마주치는 일이 많진 않다. 특히 농사일이 많지 않은 농한기면 마을을 걷다 길 위에서 이웃을 만나는 일은 더 드물어진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와 함께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는 일, 그것은 이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 온 뒤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인사에 인색하던 나는 어쩌다 이 낯선 곳에서 인사성 밝은 사람이 되었을까.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대부분은, 아니 99%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 인사는 웃어른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일 수 있겠다. 타지에서 온 외지인으로서, 오랫동안 이 마을을 지키고 가꿔 오신 마을 어르신들께 잘 부탁드린다고, 마을에 품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대신하는 간단한 한마디 일지도.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서 인사는 나에게 그저 기분 좋은 일이다.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이가 있다는 것이 좋다. 인사 뒤에 돌아오는, 웃음 가득한 주름진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좋다. 인사를 주고받는 일이 어색하지 않고, 새삼스럽지 않고,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인 이곳에서 나는 종종 ‘환대’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오가는 마을 이웃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마을’ 혹은 ‘동네’ 라는 말, 눈으로 읽고 입으로 말하지만 마음엔 닿지 않았던 그 단어를 실감한다. 오가는 인사 속에서 나는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짧게 건넨 한 마디 인사는 때론 긴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화의 주제는 다양하다.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마을의 전 이장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면, 늘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시며 그대가 좋아하는 명언들을 알려주신다. 전 이장님이 자주 꺼내시는 것은 행복론. 유명한 철학자들의 말을 빌려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 비법을 알려주신다. 늘 집 옆 밭에 홀로 앉아 일하는 모습으로 만나는 할머니는 약초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얼마 전에는 밭에서 약초를 캐고 계셨는데, 내 눈에는 마치 시들어버린 잡초인 것만 같았던 식물들의 이름과 효능, 키우는 법을 알려주시고선, 한번 직접 키워보라며 뿌리 몇 개를 손에 쥐어주셨다. 마을 이장님 곁에서 마을의 살림을 살뜰히 챙기시는 사무장님을 길에서 만나면, 꼭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부르신다. 그러고선 오랜 연고지를 떠나 낯선 이곳에 내려온 나의 먹고 살 방법을 함께 고민해주시며,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정답게 해주신다.   

마을 앞 바다. 여름 성수기임에도 붐비지 않고 한적하다.
마을 앞 바다. 여름 성수기임에도 붐비지 않고 한적하다.

인사는 내가 사는 마을을 넘어서기도 한다. 주말이면 내가 사는 마을을 벗어나 남해의 곳곳을 두 발로 걸어 다니곤 하는데, 그러다보면 우리 마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마을들을 지나게 된다. 그곳에서도 어르신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누구요?”하시기도 하고, “어디서 왔냐?”하신다. 워낙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도시와 달리, 낯선 이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작은 마을. 모르는 얼굴의 정체가 궁금하신 게 당연하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우리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돌아다니면,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왜 우리 마을에 온 건지 너무 궁금해진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경계심이기도 하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간단하다. “안녕하세요!”하는 짧은 인사. “안녕하세요. 어느 마을에서 온 누구인데, 마을이 참 예쁘네요.”하면 “볼 것도 없는데 뭐가 이쁘다고.”하시기도 하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기도 한다. 내가 먼저 쏘아올린 인사는 내가 어디에서 온 누구임을 밝히면서 조용한 이 마을에 불쑥 찾아든 위험한 인물이 아님을 알리는 신호이며, 되돌아오는 인사는 멈췄던 발걸음을 떼어 다시 가던 길을 편하게 가라고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이주한 뒤, 오가는 길에 마주칠 때마다 마을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며 생활한지도 7개월 째. 그런데 인사를 하면서 또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 꼭 ‘성’을 그렇게 물어보시는 것이다. 다들 성씨만 물어보시곤, 나의 이름은 별로 궁금치 않은 눈치이다. 왜 나의 성씨가 궁금한 걸까? (2화에서 계속됩니다.)


/ 인터뷰 /


남성 / 85년생 / 2019년 8월에 남해로 이주하여, 현재 상주면에 거주중


Q1. 서울에서 이주하셨는데, 원래 인사를 잘 하는 사람이었나요?

도시에 살 때는 인사를 안 하고 살았죠. 원래 인사를 잘 안하는데, 이 마을에서는 아는 사람이던 모르는 사람이던 인사를 하죠. 왜냐면 그런 문화니까요. 등산을 가면, 등산인 들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게 하나의 문화인 것처럼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문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Q2.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이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 인사를 하나요?

일단 인사를 하고 보죠. 도시에서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다보니,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 일부러 인사를 건네며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데 마을에는 외부인 들의 출입이 거의 없다보니, 길에서 마주치면 대부분 마을 사람이라고 여기고 먼저 인사를 건네요. 가끔 인사를 건네도 답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그럴 땐 마을에 놀러온 관광객이더라고요. 그분들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니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죠?


Q3. 마을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면 보통 어떤 반응인가요?

잘 받아주시죠. 대부분 웃으면서 반겨주세요. 그만큼 서로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거겠죠. 인사를 먼저 건네는 저도, 그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하는 어르신들도 말이에요.


Q4. 마을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다 생긴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면서요?

맞아요, 얼마 전 일인데요. 읍내에 차를 끌고 나갔다가 거의 집에 도착할 무렵에 앞집에 사는 할머니를 만났어요. 반가워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려던 참에, 할머니가 가꾸시는 밭고랑에 한쪽 앞바퀴가 순간 빠져버렸어요.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정신이 팔린 거죠. 밭에 빠진 바퀴가 헛돌기만 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5~6명 정도의 마을 어르신들이 나타나서 차를 둘러쌌어요. 평소에 잘 못 보던 어르신까지 나타나셨죠. 다 같이 차를 들어보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근처에 있는 긴 목재를 바퀴 아래에 덧대어서 밭에서 빠져나왔어요. 그러고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선 순식간에 골목이 조용해져버렸는데,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Q5. 앞으로도 인사, 계속 할 건가요?

그럼요, 열심히 해야죠. 새로 마을에 살러 오시는 분들께도 인사를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인사를 주고 받다보면, 본인 스스로 즐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본 저작물의 지식재산권은 권진영 님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