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성 / 1970년생 / 1999년 남해로 시집와서, 현재 상주면에 거주중
Q1. 처음 시집을 오셨을 때, 집성촌 마을이 낯설지는 않으셨나요?
그렇진 않았어. 내가 원래 살던 고향 마을도 진주 강 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니까. 이 마을로 시집을 오고 나서는, 손 촌 며느리가 되었지. 내가 시집을 왔을 때도 어르신들이 성씨를 물어대셨어. 그런데 지금은 좀 나아진 거야. 옛날에는 부락끼리 더 구분이 강했어. 들으니, 시아버님이 원래 살던 산 쪽에서 지금의 집터로 내려오시면서 도랑을 내셨다고 하더라고. 박 촌과 손 촌의 경계를 만드신다고. 옛날에는 그만큼 서로 성씨를 구분하는 게 강했던 거지.
Q2. 4개 성씨 촌중에 제일 규모가 큰 곳은 어디에요?
지금은 박 촌이 제일 크지. 그런데 옛날에는 내가 시집온 손 촌이 더 컸어.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이 나이를 먹고 하나둘씩 돌아가시고,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서,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줄고, 각 부락의 규모도 달라져온 거지.
Q3. 각 부락 사람들이 모여서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각자 시제를 지냈지. 조상한테 지내는 문중 제사 같은 거야. 집집마다 회비를 내서 제사 음식을 마련했는데, 누구 씨네 시제에는 그릇이 몇 개더라, 누구 씨네 시제에는 사람이 몇이 모였더라, 하면서 서로 은근히 경쟁하고, 견제하는 게 있었지. 서로 힘자랑 하는 거지.
Q4. 지금도 시제를 지내나요?
김 촌은 아직도 지내. 그런데 나머지 세 촌, 손 촌, 정촌, 박 촌은 이제 시제를 안 해. 김 촌이 규모가 제일 작은데도, 계속 제사를 지내고 있지. 박 촌에서 제일 먼저 시제가 없어지고, 그다음 손 촌에서, 정 촌에서 없앴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지. 자식들이 출가하고 나서 제사를 지내러 오지도 않고, 마을에 남은 어르신들은 이제 나이가 많아 제사를 챙길 힘이 없으니까.
Q5. 옛날과 달라진 것이 또 없나요?
없어. 옛날하고 똑같아. 내가 시집오고서 우리 마을은 딱 두 가지만 바뀌었어. 하나는 길, 다른 하나는 지붕. 옛날 흙길이던 게 지금처럼 새로 닦인 길이 되었고, 전부 쓰레트 지붕이던 것을 걷어내고 새로 싹 바꿔 달았지. 그 둘 말고는 모두 그대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