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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일상 문화 안내서 4화. 이주 후에 뒤따르는 것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일상 문화 안내서
권진영
생활인
동네
남해 두모마을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내가 지금껏 거부해온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고,
내가 관철해온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나라 동쪽 끝 섬, 울릉도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마침 일요일이었던 터라, 업무상 가깝게 교류하고 있던 지역 주민의 손에 이끌려 어느 마을의 작은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예배가 끝나고 교인들이 모두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도 초대를 받게 되었는데, 교회 내부에 마련된 공동 식당에서 생전 처음 보는 풍경과 마주했다. 그 식당에는 세로로 길게 두 줄의 식탁이 마련되어있었는데, 한 줄에는 남자들이, 다른 한 줄에는 여자들이 각자의 식판을 앞에 두고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남녀가 나란하게 구분된 밥상에는 한 치의 오차가 없었는데, 뭍에서 배를 타고 출장 온 사람들로 잠시 어그러졌다. 남녀가 한 테이블에 섞여서 밥을 먹는 건 나 그리고 함께 출장 중인 동료들뿐이었다.

 

그 어색하고 떨떠름했던 섬마을 교회에서의 밥상 풍경을 다시 꺼내어보는 건, 남해 시골 마을에서 마주한 밥상 풍경이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서 남해로 이주한 뒤, 크고 작은 마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번 마을 어르신들과 식사를 함께 하고서야 알아차렸다. 남녀가 따로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풍경이 어느 시골 마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곳이 동쪽 끝 섬 울릉도이든, 남쪽 끝 섬 남해이든, 시골 밥상에는 앉는 순서와 자리가 철저하게 정해져 있었다. 밥상을 차리는 사람인지 혹은 차려진 밥상을 받는 사람인지는 나이에 따라 혹은 성별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었다.

 

슬프게도 30대이면서 여성인 나는, 밥상머리에서 가장 서열이 낮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마을에서는 두 번의 노제가 있었다. 그때마다 마을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마을에서 가장 젊은 여성 그룹, 그래보았자 대부분 60대 전후의 어머니들이 일사분란하게 상을 차리는 데 앞장섰다. 나도 그 틈에 끼여서, 가장 먼저 할아버지들을 위한 상을, 그 다음으로 할머니들을 위한 상을, 그리고선 그 다음 연배의 중장년 남성들을 위한 상을, 그 밖의 손님들을 위하 상을 차리는 일을 도왔다. 마을 회관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수시로 밥상마다 부족한 것들을 여러 번 채우는 것을 반복한 끝에야, 어머니들의 틈에 끼어 나도 같이 밥 한술을 그제야 뜰 수 있었다. 가장 늦게 밥상 앞에 앉았지만, 가장 빨리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야하는 일도 이곳에서는 자연스럽다. 차린 밥상을 다시 순서대로 모두 정리하고 나면, 제사는 그제야 끝이 났다.

 

처음에는 의도치 않게 정해진 서열을 어지럽힌 적도 있었다. 지난 가을, 마을 어르신들과 다 함께 관광버스 한 대에 몸을 실고서 가을맞이 소풍을 근교로 떠났다. 마침 그곳 역시 바다를 끼고 있는 곳이었던 터라, 수산물 센터에 들리게 되었다. 그리고선 야외 정자에서 예정에 없던 간식 시간이 시작되었다. 횟집에서 갓 떠온 생선회와 술이 오늘의 간식. 옹기 정기 작은 정자에 둘러 모여 회를 집어먹었는데, 회를 우물우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마을 어머님들은 다 회를 안 드시고 계시는 것이다. 여러 번 권해도 젓가락을 안 들고 계시기에 혼자 속으로 ‘왜 회를 안 드시지? 다들 회를 안 좋아하시나?’ 했는데, 아니었다. 어머니들은 자기들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바깥양반들이 얼마간 먹고 자리를 비우고서야, 어머니들이 정자를 차지하고서 회를 드시길 시작했다. 먼저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해댔던 나는 그때 얼마나 당혹스럽고, 어머님들의 눈치가 보였는지 모른다.

 

내가 지역으로 이주한 후 밥상 앞에서 여러 번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 순서와 구분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라기보다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숨김없고, 매끄럽게, 이곳에서 평범한 일상으로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적어도 나이 혹은 성별에 따른 위계질서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일컬어졌고, 혹여 잔존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게 ‘숨겨야하는 것’이었으며,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으로서 결코 ‘매끄러울 수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대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주소지를 이동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이주를 결심할 때에도, 이주를 한 뒤에도, 나 역시 차마 알지 못했다. 내가 매일 매일 변화하기 바쁜 대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이주한다는 것이 다르게 말하면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것들, 때론 정체된 것들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평등’ 대신 ‘차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분명히 같은 나라임에도,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때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내가 지금껏 거부해온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고, 내가 관철해온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이주를 꿈꾸는 각자에게 남은 몫이다. 

/인터뷰/

여성 / 1993년생 / 서울에서 남해로 이주한지 2년차. 그래도 2주에 한 번꼴은 서울에 올라간다. 주로 평일은 남해에서, 주말은 서울에서 보내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Q1. 마을 혹은 지역에 살면서 나이 혹은 성별에 따른 차별이나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나?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살면서 그렇게 많이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 공동체에 소속이 되어야 비로소 그 서열 안에서 나의 위치가 생긴다고 볼 수 있는데, 내가 아직은 마을의 공동체 안에 그렇게까지 깊이 속해있지는 않은 것 같다. 보통 서로 친해지게 되면, 선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렇게 친해질 만큼, 마을 사람들과 엄청 긴밀하게 만나고 있진 않다. 스스로 외부인과 마을 주민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위치를 설정하고 있기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다.

Q2. 그래도 이주 후 새로운 이웃들과 소통하거나 관계를 맺으며, 불편하거나 어려웠던 순간은 없었나?

내가 어릴 적에 자라온 환경 역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친척집에 제사 지내러 가면, 남자들 앉는 밥상, 여자들 앉는 밥상, 애들이 앉는 밥상은 달랐다. 그래서 마을에서 겪는 일들이 그리 낯설거나 놀랍진 않다. 그래도 종종 불편하고 화날 땐 있다. 만날 때마다 “왜 젊은 여자가 아직도 결혼을 안했냐, 빨리 결혼부터 해라”고 잔소리를 하시는 분도 있고, 어떤 한 분은 나의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하신데 본인을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 적도 있다. 가끔 마을에서 어머님들만 고생하시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Q3. 그런 순간마다 어떻게 대처를 하나?

나는 그런 불편한 말이나 행동은 더 하시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반응을 “재밌다”고 하신다. 정확히 어떤 부분을 두고서 재미있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싫은 소리를 해도 웃으며 넘기시는 것을 보면 나의 의사가 잘 전달은 된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 고민이 많다. 내가 마을에 살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들마다,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다.

Q4. 이주 후에도 마을 주민과 외부자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위치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본능적으로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가끔 마을 어르신들이 나의 거처에 대해서 물어보시면, “저는 서울에 계속 왔다 갔다 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굳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려는 것인데, 어느 정도 그런 거리가 필요한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칠십년, 팔십년을 지금처럼 살아왔을 것 아닌가. 무엇이든 다르게 고치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마 가장 가깝게 지내는 이장님께도 종종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려도, “촌은 어쩔 수 없어. 촌은 원래 그래.”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어떤 문화가 계속 이어져 내려오는 데에는 분명히 그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하루아침에 당장 깨부수려고 하는 건,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이 지켜왔던 전통에 대한 무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에 내가 동참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기도 하지만, 외부자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외지에서 왔기 때문에, 다른 입장을 더 쉽게 내보일 수 있기도 하니까. 그러니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완전히 외부인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마을 주민도 아닌, 그 중간 언저리에서 애매모호한 경계인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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