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헤는 밤, 별이 빛나는 공주에서, '주미원'
원치복·이영복
부부
동네
충청남도 공주시 / 서울 상도동
주말에는 공주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주미원' 원치복, 이영복 님
"활력이 넘치는 걸 보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원치복 교직 생활을 하다가 3년 전에 정년 퇴임했어요.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퇴직 이후 시골에서 집 짓고 여유롭게 생활하는 삶을 살았을 텐데, 국립공원에서 천문 강의를 하게 되어서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영복 가정가사 교사로 재직 중에 남편을 만났어요. (웃음)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죠. 그게 엊그제 같으면서도 벌써 한참 전 일이네요. 지금은 남편이 하는 일을 도우면서 집안 일과 텃밭을 가꾸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5도 2촌 생활은 어떠세요?
이영복 도시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누리는 시간이 많아진 부분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에요. 올 봄에는 공주 집 주변에서 쑥을 캐서 쑥개떡도 만들어 먹고, 지난주에는 아카시아 꽃잎을 따서 식초도 담갔어요. 오늘 담근 식초를 먹어봤는데 잘 숙성되었더라고요. 공주에서는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산과 들이에요. 서울에서는 계절 변화를 잘 못 느끼는데, 여기서는 가깝고 충분하게 계절을 즐기고 있어 좋아요. (웃음)
원치복 여유로운 시골살이를 상상했는데 현실은 굉장히 바빠요. (웃음) 토요일 저녁 공주로 내려와서 이틀 정도 시간을 보내는데,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요. 앞마당 잡초 제거하랴, 잡목 제거하랴 여기서는 할 일이 정말 많아요. (웃음) 그래도 활력이 넘치는 걸 보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죠.
공주에서는 어떤 일상을 보내세요?
원치복 여기가 공기도 맑고, 빛도 적고 조용하다 보니 별 보기에 아주 좋아요. 어제 서울에서 심야 버스를 타고 공주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어요. 서울에서 닷새 동안 일하면서 몸은 고되었지만, 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 바로 망원경을 설치했어요. (웃음) 최근 프랑스에서 구매한 AI 망원경으로 아령성운을 관측했어요. 예전에는 별 사진 찍으려면 망원경과 카메라, 컴퓨터까지 설치해야 했어요. 이제는 AI 망원경 하나에 모든 기능이 담겨져 있어 아주 수월해요. (웃음)
이영복 저는 오자마자 텃밭에 가서 작물의 상태를 살펴봤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깜깜한 밤에 누가 저희를 봤다면 정말 수상하게 여겼을 거예요. 남편은 새벽 3시까지 별을 보고, 저는 텃밭을 보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웃음) 텃밭과 꽃밭은 온전히 제 공간이에요. 남편이 집 주변 잡초, 잡목 관리는 해주지만, 텃밭과 꽃밭에는 손도 안 대거든요. (웃음) 자연 속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참 좋아요.
"시골에 자연과 마주하는 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주를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해요.
원치복 은퇴 이후 귀촌을 결심한 후 지역을 정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등 방방곡곡 다니면서 살펴봤는데 모두 장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역을 결정할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어요. 저는 별 보기는 환경이 최우선이고, 주민 텃세가 없는 곳인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고압선, 축사가 없고, 텃세가 없는 곳을 찾다보니 돌고 돌아 고향인 공주가 최적이었어요. (웃음)
이영복 공주로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저희 작은 언니때문이에요. 여기서 10분 거리에 언니 가족의 세컨하우스가 있거든요. 종종 언니 세컨하우스에 놀러 갔는데 조용한 분위기의 동네가 너무 좋은 거예요. 제가 귀촌해서 집 짓고 살려고 한다니까 언니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주말이면 일대 마을을 돌아다니며 괜찮은 땅과 집을 알아보고 알려줬거든요. (웃음) 언니 덕분에 여기 땅도 사게 되었고요. 중개사무소 통해서 알아봤다면 이만큼 좋은 장소를 찾기 어려웠을 거 같아요.
세컨하우스를 짓기로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이영복 보통 남편들이 시골 가서 살자고 하고, 아내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저희는 반대로 제가 내려가서 살자고 남편을 설득했거든요. (웃음) 내려오기 전부터 서울에서 주말농장도 하고, 도시농업 관련 강의도 듣고 관심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조그만한 땅에 뭔가를 해도 지속하기 어렵고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시골에 자연과 마주하는 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 같아요. 그리고 먼저 내려가서 살고 있는 언니의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웃음) 언니가 지은 집을 오가면서 전원생활이 저와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언니네 집에 왔다 가면 늘 활력이 생겼어요.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해방감도 너무 좋았고요.
“집을 지을 때 무엇보다 상호 간 신뢰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이 아담하고 디자인이 독특하네요. 집 짓는 과정이 어떘는지 궁금해요.
원치복 땅을 사고 나서 집의 설계, 시공할 여러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지인이 지방에 집 짓을 때는 그 지역에서 하는게 좋다고 하길래 지역에 있는 종합건설업체도 찾아가 봤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또 단독주택만 전문으로 하는 전국구 대형업체에도 의뢰했는데 팜플렛 보고 그 중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고르면 되더라고요. 편하긴 한데 천편일률적인 집은 또 짓고 싶지 않았어요. 고민하던 중 아들을 통해 공유작업실을 같이 쓰고 있는 건축사사무소를 소개받았어요. 아들과 여러 차례 프로젝트 협업도 하기도 했던 팀이기도 하고, 알고 지내던 팀이라 믿음이 갔어요. 홈페이지에 정리된 이전 작업물의 디테일이나 완성도도 높아 보여서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어요. 시공은 건축사사무소와 협업한 경험이 있는 충청권에 자리한 건설업체에 맡겼어요. 시공 단계에서 건축주의 의도를 제일 잘 아는 건축가와 긴밀한 협업도 중요하기도 했고,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업체였거든요. 집은 오랫동안 살 공간이기도 하고, 짓는데 큰 돈이 들어가잖아요. 주변에서 집 짓는 과정에 고생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상호간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어려울 거 같았거든요.
설계를 의뢰할 때, 어떤 정보를 참고 하셨는지 궁금해요.
이영복 EBS <건축탐구, 집> 프로그램을 즐겨 봤고, 카페 '지성아빠의 나눔세상'과 유튜브 '이동혁 건축가'에서 정보를 많이 얻었어요. 단독주택 건축 관련 책도 많이 읽고, 건축박람회장도 가 보면서 기본적인 지식을 많이 쌓으려 했어요. 물론 먼저 집 짓은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참고하기도 했고요. 좀 공부하다 보니 도면이나 구조에 대해 이해가 많이 되었어요. 건축가와 설계를 진행하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고, 발전시키는데 도움되었기도 하고요. 건축의 언어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집의 의도를 건축가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축주가 많이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웃음)
"이 집을 짓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집은 사각형 평면의 아파트였거든요."
어떤 집을 바라셨나요?
원치복 물 안 새고, 단열 잘 되는 집 본연의 기능 완성도가 높은 집을 원했고요. 별 보기 좋은 집이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이영복 도시에서 오래 살다보니 사각형의 전형적인 아파트 평면만 생각했거든요. 집 지을 때도 당연하게 사각형의 형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건축가가 보내준 첫 설계 도면을 받고 너무 놀랐어요. 시안 중에 길쭉하면서 약간 시옷자로 꺾인 구조로 된 안이 있었어요. '아, 이렇게 집을 지을 수 있구나' 싶었어요.그래도 공사비 절감이나 공간 효율이 좋은 사각형 구조의 시안을 선택했어요. 근데 결정된 이후에도 비정형적인 구조 시안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건축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중간에 설계안을 변경해달라고 했고, 지금의 집이 만들어졌어요. (웃음) 저는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을 원했는데 딱 좋아요. 하루 종일 저녁까지 불을 켜지 않아도 모든 부분이 밝은 집이라 정말 마음에 들어요.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은 어디 인가요?
이영복 거실에서 복도를 지나면 안쪽에 안방이 있어요. 거실-안방을 잇는 복도가 사선으로 꺾여져 있어 거실에서 안방이 보이지 않아요. 안방이 독립적이고 아늑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안방 세 면에 창이 있어요. 동 틀 무렵 창을 통해 드리우는 빛이 아름답고, 새벽에 침대에 누워서 보는 달도 참 예뻐요. 그리고 서울 집에서는 못하는 걸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거실과 안방 사이 복도에 있는 저 액자가 서울 집에서는 엄청 커 보여서 그냥 보관해 두었거든요. 여기 오니 사이즈가 딱 맞아요. (웃음) 가끔 늦은 밤에 아들이 거실에 있는 피아노를 치는 소리가 들려요. 서울에서는 밤 9시 이후 듣지 못한 소리죠. (웃음)
"우리만의 정원에 대한 꿈을 각자 가지고 있었던 거죠."
실제로 집에 살아보면서 더 좋아진 공간이 있을까요?
원치복 집 구조가 사각형이 아니다 보니, 동네 분들이 관심 있게 보시면서도 지나가시면서 꼭 한 번씩 이야기했어요. 집을 이렇게 지으면 안 된다고요. (웃음) 주변에 신축한 집들이 꽤 있는데, 우리집만 사각형 구조가 아니거든요. 길쭉하면서 사선 구조가 되면서 안방 뒤쪽에 빈 공간이 생겼어요. 도면으로 봤을 때는 빈 공간의 쓰임새가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완공된 이후 우리 가족의 아지트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되었어요. 한 가운데 둔 화목난로에 둘러 앉아 시간을 보내요. 잡목으로 가지치기한 아카시아 나무 가지를 땔감 삼아 고구마도 구워 먹고, 불멍도 하면서요. 저희 집에 숨어있는 비밀 공간이자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어요.
이영복 거실과 앞마당을 잇는 툇마루를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툇마루에 앉거나 누워서 햇볕에 해바라기를 할 수도 있고요. 빨래를 널기도 하고, 차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주로 마당과 텃밭 갈 때 여기로 나가요. 아파트 생활이 익숙한 도시 아이들이 오면 현관이 아닌 곳으로 외부로 나가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해요. 남편은 별 볼 때 망원경 같은 관측도구를 툇마루로 옮겨요. 또 집안 물건을 차에 싣거나 내릴 때도 유용해요. 집에 없을 때 이웃집에서 야채나 먹거리를 이곳에 두고 가시기도 하죠.(웃음)
주미원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요?
원치복 브랜딩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아들과 가족회의를 여러 번 했어요. 세 가족이 집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나누면서 집 이름을 짓자고 했거든요. 세 가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 '주미원'이라고 지었어요. 주미원은 영문으로는 zoomiwon, 한문으로는 宙美園으로 적습니다. 첫 번째로는 집이 위치한 동네 ‘주미동’의 지역성을 담았고, 한문으로 읽으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이라는 뜻으로 풀 수 있어요.
이영복 제 취미기도 하고, 남편의 다짐이기도 한 '정원'을 잊지 않기 위해 집 이름에 정원을 넣었어요. 정원을 처음 계획하는 가족회의 때, 각자 모아뒀던 씨앗들을 어디선가 꺼내온 것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만의 정원에 대한 꿈을 각자 가지고 있었던 거죠. (웃음)
원치복 Zoom은 망원경의 줌을 의미하기도, 화상 회의 어플리케이션 이름을 뜻하기도 해요. 제 직업이자 취미인 천문 관측과 아들이 리모트 워크가 가능한 집이라는 뜻도 붙여봤어요. 그리고 ‘줌, 이(영복과) 원(치복에게)’라는 뜻도 있네요. 우리가 우리에게 선물한 집이라는 뜻도 있고,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집 문패처럼 둘의 성이 모두 담기는 개념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웃음)
원치복·이영복 부부가 'pick'한 동네 공간
수촌리 고분군일몰이 아름답고 별 보기 좋은 의당면 수촌리 고분군을 소개합니다. 조용히 별을 볼 수 있고 시야가 트여 있고 주변이 어두워 흐린 별까지 잘 보입니다. 주차하기 편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습니다. 공주 나들목으로 나와 청룡리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고분군으로 향할 수 있어 교통편도 좋습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도심 속에 우뚝 솟은 황새바위 순교성지를 추천합니다. 황새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라 하여 황새바위라고 불렸는데,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때에 천주교 신자들이 항쇄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되었다 하여 항쇄 바위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머리를 숙여 들어가는 돌문, 순교탑, 12개의 빛돌, 경당과 성모 동산 등이 이곳을 찾는 모든 분들이 조용히 묵상하며 산책하기에 좋은 공간이에요.
곡물집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부부가 공주에 내려와서 만든 공간이에요. 지역의 곡물들을 큐레이션해서 판매하고, 메뉴로도 만들어 소개하는 역할을 해요. 내부에는 샵인샵 개념으로 작은 독립서점도 함께 있고, 지역 농부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해서 구도심을 지날 때마다 자주 들르게 돼요. 예쁘게 패키징된 곡물들은 공주 여행의 기념품으로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