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내기 위해 빚는 술, '술익는마을'


조권능

술익는마을(주식회사 지방) 대표


동네

전라북도 군산시

군산의 서사(敍事)를 지켜내기 위해 술을 빚기 시작했다는 '술익는마을' 조권능 님

개복동 카페 '나는 섬' ⓒ조권능
개복동 카페 '나는 섬' ⓒ조권능
군산 영화시장 재생 프로젝트 '액티브로컬' 창업 캠프
군산 영화시장 재생 프로젝트 '액티브로컬' 창업 캠프

"홍대처럼 문화예술로 변화하는 동네가 되길 바랐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현재 군산 구도심에서 지역관리회사(Area Management) 주식회사 지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영화동에 위치한 영화타운의 전체 운영 관리와 영화타운의 컨시어지&라운지 '럭키마케트'와 커뮤니티 호텔 '후즈'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영화동 옆 동네 월명동에서 군산만의 사케를 만드는 술익는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군산 구도심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여기서(영화동) 도보 10분 거리인 개복동에서 시작했어요. 2008년부터 했으니까 벌써 15년 되었네요. (웃음) 그때 당시 문화예술인으로서 지역 재생에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도시 재생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는데, 문화예술로 홍대 거리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가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제 상상을 펼쳐볼 수 있는 동네를 찾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서울을 생각했는데, 너무 슬럼화된 내 동네 군산 구도심이 눈에 들어왔어요. 개복동은 제가 다니던 교회가 있기도 했고, 어릴 적 추억이 많았던 동네였기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던 거 같아요. (웃음)


개복동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처음에 카페 '나는 섬'을 만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식음료를 판매하는 카페였지만,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문화예술활동 작업장이기도 했어요. 나는 섬의 모티프가 되었던 건 당시 홍대의 카페였어요. 예술가들이 카페 같은 대안 공간에 모여 홍대만의 인디문화를 만들어 가는 게 너무 멋져 보였거든요. 나는 섬이 군산 구도심에 그런 공간이길 되길 바랬어요. 오픈 이후,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고 해서 장사도 제법 되었어요. 그러던 중에 바 '앙팡테리블'을 열었어요. 나는 섬에서 간단한 맥주, 칵테일을 팔긴 했지만, 사람들이 10시 이후에 동네에 머물 만한 곳이 딱히 없었거든요. 제가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장사가 잘될 때 탄력받아서 앙팡테리블을 덜컥 오픈하게 되었죠. (웃음)


10여 년을 개복동에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옆 동네 영화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초반에는 해보고 싶었던 작업, 실험 재밌게 했어요. 하지만 5년 차부터는 지루하고 아주 힘들었어요. 되게 지쳐 있었고, 앞날이 잘 안 그려졌거든요. 동네에서 뭔가 열심히 한다고 이렇게 이끌어 왔는데, 다음 스텝이 잘 안 보였어요. 그러던 와중에 2017년 옆 동네 영화동에서 영화시장을 재생하는 '액티브로컬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어요. 기존 공공 재생 프로젝트는 기획과 설계를 다하고 나서 민간 운영자를 모집하는 방식인데, 액티브로컬 프로젝트는 사업 초기에 캠프를 운영하면서 예비 운영자와 함께 프로젝트의 기획, 설계를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었어요. 당시 캠프 지역 마스터(멘토)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타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프로젝트 주관사에서 지역관리회사(Area Management)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액티브로컬 프로젝트는 사업 이후 지역민이 운영하는 지역관리회사가 운영하는 방식으로 기획되었거든요. 그때 당시 딱 10년 된 시점이기도 하고, 결혼도 했을 때라 과감하게 한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개복동을 떠났어요.


로컬 마켓 콘셉트로 조성된 '영화타운'
로컬 마켓 콘셉트로 조성된 '영화타운'
영화타운에 자리 잡은 전통주바 '수복' ⓒ조권능
영화타운에 자리 잡은 전통주바 '수복' ⓒ조권능

"처음에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울 지 몰랐어요."

액티브로컬 프로젝트 이후 영화타운까지 조성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2017년 11월에 예비 운영자(창업자)를 선발하는 액티브로컬 캠프 이후, 2019년 8월에 영화타운으로 오픈하기까지 약 2년의 세월이 걸렸어요.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어요. (웃음) 캠프 이후, 프로젝트 인수인계한다고 서울로 한번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업무 인계하던 컨소시엄 팀이 지역관리회사 운영을 컨소시엄 형태로 하는 방식을 제안해 주셨는데, 당시에는 의사결정 구조가 너무 복잡해질 거 같아 거절했어요. 이런 방식의 공공 프로젝트는 처음이고, 새로운 유형의 사업이다 보니 과정마다 어려움이 많았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다 보니, 혼자 하겠다고 한 결정을 살짝 후회하기도 했어요. (웃음) 우여곡절 끝에 영화타운을 오픈 한 뒤, 한동안은 정신없이 보낸 거 같아요. 


개복동에서 '앙팡테리블'을 운영하셨듯이 바쁜 와중에도 술집은 꼭 운영하셨네요. (웃음) 영화동 '수복'은 어떻게 열게 되었나요?

몇 년 전 명절 때, 부모님 댁에 누워 페이스북을 보다가 우연히 한 글귀가 들어왔어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수제 청주(사케)의 도시, 군산' 군산을 혁신시킬 산업은 양조 산업이고, 로컬 브랜드가 할 수 있다는 요지의 모종린 교수님 글이었어요. 그날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스스로 군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엄청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과거부터 마음 한쪽에 양조를 품고 있었는데, 머뭇거리던 마음이 들킨 거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바로 모종린 교수님께 연락드렸어요. 제가 사케바를 해보고 싶은데 도와달라고요. 전혀 인연이 없었는데 그 주 주말에 바로 군산에 와 주셨어요. 교수님께서 조언도 많이 해 주시고 '수복'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원래 군산 구도심에 '백화수복' 청주로 유명한 백화양조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수복'이라는 뜻은 잃어버렸던 걸 되찾는다는 의미도 있어서, 잊혀 가는 로컬의 술을 알리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앙팡테리블은 제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했지만, 수복은 기획만 하고 운영은 별도로 다른 분이 하고 있어요. 운영까지 한다면 정말 다른 일을 못할 거 같아서요. (웃음) 그래서 영화타운의 컨시어지&라운지 '럭키마케트'와 커뮤니티 호텔 '후즈' 운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권능 대표와 술익는마을 크루 ⓒ술익는마을 페이스북
조권능 대표와 술익는마을 크루 ⓒ술익는마을 페이스북
술을 테마로 진행한 체험 프로그램 ‘술 빚는 주말’ ⓒ조권능
술을 테마로 진행한 체험 프로그램 ‘술 빚는 주말’ ⓒ조권능

“함께하는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해요”

어떻게 직접 술을 제조하는 술익는마을 프로젝트로 연결된 건가요?

'수복'을 영화타운 함께 의욕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전통주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별로였어요. (웃음) 당시 영화타운 에어리어 매니지먼트 관련 일을 정신없이 처리하다 보니, 수복은 좀 천천히 운영해보자는 마음으로 뒷순위로 밀렸어요. 그러던 중 행정안전부에서 진행하는 청년마을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어요. 지방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도시 청년들의 지방살이를 지원하는 목적의 사업이었죠. 이전까지 청년마을 프로젝트에 참여한 팀들은 주로 지방에 머물고, 살게 만드는 콘텐츠가 많았어요. 제가 한 4년 영화타운을 운영하면서 머물게 하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만으로는 불안전하다고 봤어요. 프로젝트 취지대로 지속가능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제조, 생산하는 청년마을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운 좋게도 '술익는마을'로 2022년 청년마을 프로젝트에 선정되었어요. 청년마을 프로젝트를 계기로 군산 양조를 다시 해보자고 술에 진심인 사람들을 모았어요. (웃음) 시작할 때는 몰랐지만 행사, 브랜딩, 양조장 건립 및 제조 설비 등등 하면 할수록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더라고요. (웃음) 


'양조'는 이전까지 하던 일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분야인데요. 진행하시면서 어떠셨나요?

하던 일과 달리 양조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어요. 제조업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은 큰 비용이 뒤따라요. 매장에서 레시피 바꾸고, 패키징 바꾸는 거랑 달라요. 지금 양조장 건립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설비 하나가 2천만 원인 것도 있어요. 제 판단이 잘못되면 그냥 2천만 원 날리는 거죠. (웃음) 그래도 제가 모르는 양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함께하는 사람들 덕분이에요. 자신 있게 군산 사케를 만들겠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술을 만드는 장인분이 있었고, 프로젝트를 함께 만드는 크루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조금 속도는 느리겠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 더 재밌어요. 과정 안에서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금 하는 일을 더 깊이 있게 만든다고 봐요. 


많은 술 중에서 사케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청주가 아니라 굳이 '사케'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쌀 수탈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 호남평야에서 나오는 쌀이 군산으로 다 모였어요. 또 군산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쌀로 빚는 맑은술, 청주(사케)를 만들기에 최적이었어요. 그래서 대표적으로 구도심 월명동에 백화수복으로 유명한 '백화양조' 양조장이 있었어요. 현재는 아쉽게도 대기업으로 넘어가면서 주정이 첨가된 공장식 청주를 만들고 있어요. 양질의 청주를 만들던 백화양조의 정신과 군산의 역사와 바이브를 함께 녹여낸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통주 청주가 아니라 젊은 군산 사람들이 해석한 술, '사케'라 하기로 했어요. 내부적으로도 말이 많았어요. 청주냐, 사케냐로 1년 동안 논쟁했거든요. (웃음) 정부에서 말하는 전통을 강조해서 만드는 청주가 일본식 청주, 사케에 비하면 품질로나 다양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느꼈어요. 짧은 도시 역사,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문화를 가진 군산의 역사적 배경은 사케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군산 내항에 정박한 배들
군산 내항에 정박한 배들

"군산의 잊혀 가는 이야기를 지켜내고 싶었어요"

술 한잔에 담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크루들과 최근에 브랜딩 관련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명징한 단어로 정리된 건 없었는데, 워크숍에서 꽂혔던 말은 '지켜낸다'였어요.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10년 정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질 거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 얘기를 하다가 한 크루가 군산 앞바다에 정박한 배의 '닻'을 이야기했어요. 궂은 날씨가 되면 파도도 치고, 바람도 불잖아요. 배도 움직이지만 바닥에 꽂혀 있는 닻 덕분에 안정적으로 정박할 수 있죠. 아직 정리가 잘 안되지만,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걸 고민하고 있어요. 아무튼 잊히지고, 사라져가는 군산의 서사를 담아낸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가요?

단기적으로는 양조장 건립, 양조 면허 취득 등 술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많은 힘을 쏟을 예정이에요. 장기적으로는 매력적인 동네를 만드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한 개복동은 문화예술 활동 타운으로, 영화타운이 있는 영화동은 로컬 크리에이터 타운으로, 술익는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월명동은 로컬 브루어리 타운으로 그리고 있어요. 세 동네는 다 도보권으로 물려있어요. 세 동네를 상호보완적인 콘셉트로 엮어내어 군산 구도심에 활력을 주고 싶어요. 또 외부인 시선으로 봤을 때 군산의 매력적인 지역은 고군산군도의 섬들이라고 생각해요. 하반기에 고군산군도 섬을 대상으로 한 해양수산부에서 주관하는 어촌신활력 증진 공모사업이 진행돼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려 해요. (웃음)


조권능 님이 'pick'한 동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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