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 '팜프라'


유지황

팜프라 대표


동네

경상남도 남해군 두모마을

남해에서 지속 가능한 판타지 촌 라이프를 꿈꾸는 '팜프라' 유지황 님

다랭이논에서 모내기 워크숍 ⓒ팜프라
다랭이논에서 모내기 워크숍 ⓒ팜프라

"제가 직접 농사 짓는 농업에 종사하게 될 줄 몰랐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지속 가능한 촌 라이프를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로컬에서 활동, 사업한 지 14년 차가 되었고, 팜프라 팀으로 활동한 지는 6년 차가 되었네요.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인생 첫 해외 배낭여행을 용감하게도 이집트로 갔어요. (웃음) 영어도 잘 통하지 않고, 라마단 기간이라 밥 먹는 것도 힘든 곳이었어요. 그런 이집트에서 삶에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 있었어요. 어두워지기 시작한 저녁 무렵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현지 시장에 갔어요. 시장 내 큰 공터 주차장이 있었는데, 주차된 차량 밑에서 아이들이 들어가서 자는 거예요. 그 광경을 보고 같이 간 친구랑 펑펑 울었어요. 그 아이들의 앞으로의 힘든 삶이 그려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이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건 이후, 다음 세대들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해보자고 다짐했어요.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나온 게 ‘식주학(食住學)’이라는 키워드였어요.  식주학은 적어도 다음 세대가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스스로 먹을 것(食)을 길러내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住)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교육(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보는 기술을 배우고 실험하기 위해서 촌을 선택하게 됐어요.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내는 식(食)이라는 키워드가 흥미로운데요.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제가 나고 자란 곳은 통영 미륵도인데요. 동네가 산과 바다, 들이니 늘 자연 속에서 놀았어요. 동네 형들이랑 산으로 나무 심으러 가거나, 과실수 따 먹으며 놀았어요. 때론 용돈벌이로 바지락을 캐기도 했고요. (웃음) 어렸을 적부터 저에게 산, 바다, 들은 놀이터였고, 스스로 먹을 것을 기르고, 채집하는 게 익숙했거든요. 어렸을 적 자연 속에서 보내서 그런지 저는 자연 가까이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대학에서 메카트로닉스를 전공했는데, 저는 대동, LS엠트론 같은 농기계 회사에 일할 줄 알았거든요. 저도 직접 농사짓고, 농업에 종사하게 될 줄 몰랐어요. (웃음) 

판타지 촌 라이프를 경험해보는 팜프라 스테이
판타지 촌 라이프를 경험해보는 팜프라 스테이

"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남해의 아름다운 풍경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고향 통영이 아닌 옆 동네 남해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살던 동네는 골프장, 케이블카가 개발되면서 자연환경이 많이 훼손됐어요. 더 이상 제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살고 싶은 촌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판타지 촌 라이프의 자연은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곡식이 가득한 들판, 뒤에는 든든한 산이 있는 이미지거든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 200회 강연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판타지 촌 라이프를 실현할 정착 지역을 물색했죠. 그러던 중 남해가 눈에 들어왔어요. 남해는 통영에 비해 조선소, 발전소 같은 산업시설이 없고, 축사 같은 악취와 오염을 유발하는 시설이 적어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요. 어렸을 적 제가 나고 자란 통영 미륵도 자연환경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정착한 두모마을은 산과 바다, 들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다 있어요. 경제적으로 먹고살기 힘든 지역일 수도 있지만, 계절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정착을 결심했어요.


'팜프라'라는 팀을 만든 이유가 있으셨나요?

누구나 각자 추구하는 가치가 있잖아요. 촌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험하고, 실현할 사람들을 모아 팜프라 팀을 만들었어요. 팜프라로 촌살이에 필요한 기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201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초 워크숍을 진행해 오고 있어요.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내가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삶의 궤적 워크숍'을 진행해요. 이를 바탕으로 팜프라 브랜드에 적용하는 브랜딩 워크숍을 진행하고요. 누구는 도시와 로컬을 연결하고 싶어 했고, 누구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 했고, 누구는 농사짓고 싶어 했고, 누구는 작은 집에 살고 싶어 했어요. 워크숍에서 나온 개인의 가치 키워드를 팜프라 브랜드에 녹여내어 연간 사업, 프로젝트 계획을 세워요.  이렇다보니 매년 누구와 함께 하는지에 따라 팜프라가 달라져요. 저는 그래서 팜프라가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팜프라로 자신의 가치를 실험, 실현하는 '놀이터'를 만드는 게 제게 중요한 가치였어요. 지향하는 가치는 다 다르지만, 팜프라를 통해 개인의 가치가 실현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했어요. 팜프라를 만들고 3년은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다 해보는 실험 기간이라고 보기로 했어요. 이후에 잘 다듬어서 수익 내는 사업으로 해 볼 계획이었어요. 그 시작이 올해에요. (웃음)     


3년 동안 팜프라는 어떤 실험을 하셨나요?

3년 동안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건은 다 해 본 거 같아요. (웃음) 목공, 농사, 집 짓기, 스테이 사업 등 서른 가지 프로젝트를 100만 원부터 1억까지 다양한 규모로 해봤어요. 그중 공모, 용역같이 공공기관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도 있었어요. 팜프라가 해보고 싶었던 일을 공공기관과 함께했을 때, 잘 맞았던 일도 있었고, 전혀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가 있었을까요?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아쉬웠던 프로젝트는 '청년마을 팜프라촌' 이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시골에 빈 공유지를 활용해서 귀촌을 고민하는 청년들의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하는 거점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어요. 당시 팜프라가 머물고 있던 양아분교를 도시 청년이 지방으로 삶을 전환할 때, 촌살이를 경험하고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이 프로젝트가 잘 되면 전국에 빈 공유지를 다양한 청년 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사례로 만들고 싶었죠. 시작은 성공적이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어요. 프로젝트 도중 담당 공무원이 바뀌고, 군에서도 사업 계획이 변경되었어요. 결국 양아분교는 서울 시민이 2박 3일 머물며 농촌을 체험하는 '서울농장'이라는 전혀 다른 목적의 공간이 되었거든요. 팜프라도 아쉽지만, 그 뜻에 함께 마음을 모아 주셨던 두모마을 어르신들도 전혀 다른 공간이 된 모습에 아쉬워하셨어요. 모든 일이 결과만으로 평가될 수 없지만, 공모 제안부터 모든 과정에 하나하나 참여했다 보니 더 아쉬웠어요. 현재 운영을 마을 분들로 구성된 농업회사법인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저도 이사로 손 보태고 있어요. 권한은 없고, 책임만 남은 상황이라 여전히 아쉽긴 해요. (웃음) 덕분인지 몰라도 팜프라가 직접 땅을 사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촌 특성상 땅을 사고 싶어도 정보를 구하기 어렵고, 마을 사람이 아닌 외지인에게는 잘 안 팔려고 해요. 그러던 중 팜프라 사정을 잘 알고 계셨던 마을 이장님이 매물을 주선해 주셨어요. 부산에 있는 소유주와 몇 번의 협상 끝에 지금 팜프라 스테이가 있는 땅을 살 수 있었어요. 물론 많은 대출로 샀지만요. (웃음)

이웃과 함께하는 마을영화제 ⓒ팜프라
이웃과 함께하는 마을영화제 ⓒ팜프라
마을 앞 천천히 ⓒ팜프라
마을 앞 천천히 ⓒ팜프라

“마을분들은 저희를 학교 애들로 부르셨어요”

팜프라가 지역과 관계 맺는 방법도 궁금해요.

촌에 정착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 이해하고, 다른 주민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팜프라에게는 이장님과 사무장님이 그런 분들이었어요.  외지인인 저희가 두모마을에서 정착해서 살고 싶다고 하니까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도 마을 분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1년에 한 번씩 마을 잔치를 열고 있어요. 음식도 대접하고, 같이 영화도 보고, 농악을 하며 행진도 하고, 노래자랑도 하고요. 마을에 별다른 이벤트가 없기도 하고 저희가 하는 잔치를 많이 좋아해 주세요. 잔치는 양아분교에 머물 때부터 해서 5년 차인데, 아직도 저희를 '학교 애들'로 부르세요. (웃음)


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시나요?

남해로 귀촌한 또래들로 구성한 축구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그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축구하며 만나요. 평상시에는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 걸터앉아 마을 풍경 보는 걸 좋아해요.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을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나 살아있구나’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전 ‘쉼’이라고 생각해요. 


한 달 살기나, 정착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일단은 해 보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고요. 그리고 가고자 하는 지역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또래가 있는지 찾아보면 더 좋은 거 같아요.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친구라면 더 좋고요. 남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 남해도 환영합니다. (웃음) 저희가 시작했던 시기에는 살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 많지 않았어요. 요즘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팀이 워낙 많아져서 지금이 지방살이를 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기라고 봐요.

내 손으로 지은 작은집, DIY 집짓기 코부기 워크숍 ⓒ팜프라
내 손으로 지은 작은집, DIY 집짓기 코부기 워크숍 ⓒ팜프라
내 손으로 지은 작은집, DIY 집짓기 코부기 워크숍 ⓒ팜프라
내 손으로 지은 작은집, DIY 집짓기 코부기 워크숍 ⓒ팜프라

"촌에서 창업해도 지속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남해의 이야기를 대도시로 발신하는 이유가 있으세요?

저는 통영이든, 서울이든, 남해든 삶의 반경을 결정할 때 항상 선택지가 있었어요. 근데 팜프라촌으로 촌살이 오는 도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택지가 없더라고요. 비록 도시의 삶은 힘들지만, 도시를 벗어나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거 같았어요. 혈연, 지연, 학연 모든 연고가 도시에 있는 친구들은 도시에만 있으니깐 모르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에게 하나의 선택지로 남해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어요. 도시, 촌 모두 먹고 사는 건 어려워요. 그래서 촌에서 창업해도 지속가능한 삶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촌은 도시처럼 다양하게 누릴 순 없지만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거든요. 저는 출퇴근으로 3시간을 길 위에 버리는 건 절대 못 해요. 가까운 거리에 산과 바다, 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저에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안으로써 남해이야기를 도시 친구들에게 계속 전하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목표는 올해 상반기부터 내년까지의 저와 팀원들, 주변 친구들의 집을 지어 분양하려고 해요. 자기 집을 갖게 된다면 남은 삶에서 큰 불안 하나는 해결된다고 생각해요. 주거비가 줄어들면 적게 벌고, 적게 일할 수 있거든요. 다음 스텝으로 주거를 선택한 이유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마을 소멸을 막기 위한 것도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이 소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남해 두모마을에 계속 살고 싶어요. 식당, 소품샵, 이장, 농부, 어부 등등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어요. 공유지를 활용해 청년들의 완충지, 실험지인 ‘팜프라촌’ 사례를 만들고 싶었던 것처럼 ‘주거형 팜프라촌’을 만들어서 지역소멸에 대한 대안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팜프라는 현재 ‘팜프라촌’이라는 시골살이를 경험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마을 안에 작은 마을을 만드는 주거공동체 조성 사업도 고려하고 있어요. 다음 스텝으로는 몇 세기를 거쳐 이어져 왔지만, 사라져가는 지역의 기술, 지혜,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IT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할 거예요. 지금보다 자본이 좀 생기면 생산자를 위한 유통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현재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에서 생산자가 가져가는 비중이 10%정도 밖에 안 돼요. 90%는 유통마진으로 가져가는 구조인데, 생산자가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현재 농업인 평균 연 소득이 1,000만 원 정도 돼요. 생산자가 50%의 수익을 가져가면 연 소득이 5,000만 원으로 오르지 않을까요? 만약 자연과 가까운 곳에 살면서 스스로 노동시간을 선택하고, 삶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소득이 된다면 촌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저는 촌, 시골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구조적, 시스템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사업도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월급 많이 주는 사장이 되고 싶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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