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으로 지역을 유랑하는 노마드 '스튜디오 씨클레프'

원대한

디자이너, 스튜디오 씨클레프 대표


동네

서울 상도동, 공주 그리고 도쿄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로 지역을 유랑하는 '스튜디오 씨클레프' 원대한 님

도쿄타워가 보이는 창가가 오늘의 오피스 ⓒ원대한
도쿄타워가 보이는 창가가 오늘의 오피스 ⓒ원대한

"프리랜서라고 하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고, 대표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스튜디오 씨클레프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주로 브랜드 네이밍부터 디자인, 아이덴티티까지 구축하는 브랜딩과 그래픽 디자인 관련 일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신거죠?

이 질문을 사전에 받고 진짜 많이 고민했어요. (웃음) ‘나는 프리랜서인가?’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프리랜서라고 하는 걸까?’ ‘소득의 3.3%를 원천세로 내는 사람을 프리랜서라고 하는 걸까?’ ‘부가세를 내는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디자이너는 프리랜서가 아닌가?’ 등등 프리랜서라는 단어 하나로 정체성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 일을 봐 주시는 가까운 노무사 분에게 물어봤는데, 그건 선택의 문제라 하시더라고요. 프리랜서의 법적 정의는 따로 없고, 사회적 통념상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을 프리랜서라 하기에 스스로 정의하면 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어느 순간부터 프리랜서가 아닌 것 같았어요.


대한 님은 그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렇다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나요?

부가세 신고 등 세무 관련 일을 스스로 챙기는 순간부터 '개인사업자'라는 정체성이 커진 거 같아요. 스튜디오 씨클레프 사업자를 내고 나서부터 제가 하는 일에 대한 무게감이 달라졌거든요. 그때부터 프리랜서 원대한보다 스튜디오 씨클레프 대표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전 제가 프리랜서인지, 대표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하는 일은 똑같고 바뀌는 건 별로 없어요. 다만 대표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을 덜어내는 보호장치 같다고 봤거든요. (웃음) 프리랜서라고 하면 주머니 사정과 생존의 안부를 묻고, 대표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스튜디오 씨클레프' 라는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거죠?

프리랜서로 작업하다가,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한 프로젝트가 들어왔어요. 그게 음악과 관련된 일이기도 했고, 이왕이면 어릴 적부터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는 저와 관련 있는 네이밍이면 좋겠다 싶었어요. 때마침 당시 함께 일하던 멤버도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었고, 스튜디오 멤버가 음악(비올라)하는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을 담고 싶었거든요. 씨클레프는 영어로 '가온음자리표'라는 뜻으로, 보통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파트만 사용하는 악보 체계인데요. 그래서 우리도 우리만의 언어로 작업을 해보자는 뜻으로 이름 짓게 되었네요.

   

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는 분들은 단번에 아시겠어요.

네. 맞아요. 음악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아는데, 보통 ‘클레프’가 음자리표를 뜻하는 걸 거의 모르니까 쉬운 이름은 아닌 거 같아요. 그래서 씨클램프, 씨클래프 다양한 이름으로 택배를 받곤 합니다. (웃음) 그래서 친구들이 농담으로 원대한 오피스를 줄여 '원피스'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어요. (웃음)  

세 가족의 공주 보금자리에서 코워킹 ⓒ원대한
세 가족의 공주 보금자리에서 코워킹 ⓒ원대한

"공주는 흙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에요"

서울 상도동에서 나고 자랐다고 들었어요. 30년 이상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상도동에서 추억도 많을 거 같은데요.

작업실 동료들과 같이 자주 가는 시래기 불고기 맛집인 ‘화풍정’이라는 식당이 있어요. 원래 그 자리가 어렸을 때 입학식, 졸업식, 생일 등 좋은 일 있으면 꼭 가는 경양식당 '타임벨'이 있던 자리였거든요. 타임벨은 사라졌지만 바뀐 시래기 불고기 식당에서 점심을 작업실 동료들과 함께 먹으며, 과거와 현재를 추억이 연결되고 회상하는 게 참 좋더라고요. 오랫동안 상도동에 살다 보니, 좋아했던 공간이나 브랜드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게 아쉬워요. 그래도 변화된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도 좋고, 그걸 기억할 수 있는 동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나고 자랐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깐요. 특히 서울에서는요.      


얼마 전부터 서울과 공주에 오가면서 일하며 쉬는 일상을 보낸다고 들었어요. 공주에서 보내는 일상은 어떠세요? 서울과 다른가요? 

최근 부모님이 공주로 귀촌하면서 그 곳에 제 작업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어요. 저도 그렇지만 부모님도 서울과 공주를 오가면서 5도 2촌 생활을 하고 계셔요. 부모님을 뵈러 공주에 가기도 하지만 전 공주에 갈 때 흙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요. (웃음) 서울에서 흙은 쉽게 만나기 어렵거든요. 공주에서는 흙과 자연이 제 일상에 가깝게 있어 서울에서 보내는 시간과 전혀 다른 시간을 보내요. 일하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정원, 텃밭이 보이거든요. 일하다가 휴식 시간에 정원에 자란 잡초를 뽑기도 하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작물을 수확하는 시간이 낯설기도 하면서 반갑기도 해요. 공주에서 흙을 만지며 휴식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여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어요. 요즘은 활동 반경을 넓혀서 공주 구도심 산책도 하고, 독립서점도 찾아다니고 있어요.     


공주 외 자주 가는 지방 소도시나 지역이 있나요? 

평균적으로 일 년에 두 달 정도 도쿄에서 보내요. 국내에서는 가족, 친구, 가까운 지인 등 강한 유대로 얽힌 관계에서 많은 에너지를 쓰고 소진된다고 느끼거든요. 반면에 도쿄에서는 일하는 시간 외 상대적으로 느슨한 관계 속에서 보내요. 그래서 그런지 여유가 생겨 국내에 있을 때 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혼자 동네 바에서 술 한잔 한다던지, 취미 모임에 나가기도 하구요. 또 외국에 나와서 보면 국내에서 진행하는 일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데, 일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해요. 관계가 단절되니 되레 업무에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서 일하는 공간을 다르게 세팅하려고 해요.

   

일하는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시나요?

저는 업무에 따라 공간을 분리해서 사용해요. 글 쓰고 편집, 디자인과 브랜딩, 일러스트 이렇게 세 가지 일로 나누고 각기 다른 공간에 작업해요. 글 쓰기 작업은 적당한 백색소음과 밀도감이 있는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주로 하고, 업무적 효율을 높여야 하는 디자인 본업은 기기가 갖춰진 사무실에서 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그림 작업은 낮보다는 밤에, 동네 바에서 해요. 술 한잔 하며 아이패드로 그리죠. 공간을 달리 쓰는 것처럼 지역과 장소도 달리 쓰려고 해요. 공주에서는 조금 천천히 자연과 함께 건강하게 일하고, 도쿄에서는 새로운 시선과 3인칭 시점으로 프로젝트를 보려고 해요.


지난달 택시비가 80만원이 나왔다고 들었는데, 공주와 서울을 오가는 일 외 이동할 일이 많은가요?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택시를 움직이는 공유오피스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외부 미팅이나 감리로 이동할 일이 워낙 많았고, 멀미가 없어서 택시 뒷자리에 앉아 안정적으로 일하는 제 모습을 즐겼던 거 같아요. 그런데 얼마 전 어지럼증이 생기고 나서 최대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해요. 택시에서 전혀 뭔가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택시에서도 열심히 작업한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알았어요. 앞으로는 이동시간을 업무시간으로 보지 않으려고요.     

일본 제로웨이스트 호텔에서 제로웨이스트 브랜드 디자인 작업 중 ⓒ원대한
일본 제로웨이스트 호텔에서 제로웨이스트 브랜드 디자인 작업 중 ⓒ원대한
자주 듣는 KBS 클래식 FM(체중 아닙니다) ⓒ원대한
자주 듣는 KBS 클래식 FM(체중 아닙니다) ⓒ원대한

“제가 사랑하며, 단골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작업해요”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세요? 

제가 반응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지역, 환경, 교육, 다양성, 음악, 미술과 관련한 키워드에 먼저 반응하고 관련한 일을 선택합니다. 얼마 전에 백화점에 갔다가 파타고니아 매장에 들렀는데 그곳에 제가 작년에 리브랜딩한 환경교육센터의 브로슈어가 있더라고요. 반가웠죠. 또 ‘지역’ 키워드로 작업한 공유공간 후암연립에 ‘환경’ 키워드로 작업한 지구샵 팝업스토어가 생기는 것 같이, 제가 반응하는 키워드들이 한 데 만날 때 짜릿함을 느껴요. 그리고 브랜드나 공간 작업을 하게 될 때, 단골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요. 단골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브랜드나 공간은 애초에 작업을 시작하지 않고, 시작한 작업은 나의 단골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요.     


취미가 무엇인가요?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3년 만에 오케스트라에 들어갔어요. 오랜만에 비올라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5월에 연주회를 앞두고 있어요. 운동으로는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취향과 관심사가 일로 연결되기도 했나요?

어렸을 적부터 음악과 미술을 모두 좋아했어요.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건 일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미술보다 음악이 더 좋았는지, 음악은 평생 취미로 재밌게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어렸을 적부터 장래희망이 거의 매년 바뀌었는데, 연주자, 여행작가, 기자, 디자이너 등등 신기한 건 지나고 보니 꿈꾸던 일들을 프리랜서로 지낸 기간에 조금씩 다 해봤더라고요. 아마 제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더라면 하지 못할 일이겠죠.      


스트레스 해소법 같은 게 있으세요?

라디오 틀고 설거지하기요. FM 93.1 KBS 클래식 FM을 듣는데, 싱크대 위에 붙어있는 라디오 듣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지인들이 93.1이 제 체중인 줄 알더라고요. (웃음)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특별한 목표나 원대한 꿈은 없지만, 건강하게 긴 호흡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로 남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키워드들을 잘 지키면서요.     

원대한 님이 'pick'한 동네 공간

인스타그램 원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