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유수진
사진찍고, 디자인하는 프리랜서
워케이션 한 동네
제주도 제주시(조천읍)
여유롭게 일하며, 부담 없이 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워케이션'이라고 말하는 유수진 님
“특별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아도 잘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주로 그래픽 디자인 일을 하고 있어요. 틈틈이 사진, 영상 촬영과 편집 일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네요. 일하는 공간도 다양하겠어요.
네. 최근에는 공원, 카페, 웨딩홀, 스튜디오가 제 일터였어요. 바쁠 땐 하루에 세 지역을 옮겨 다닌 적도 있었어요.
평상시에는 주로 어디서 일하세요?
외부에서 해야 하는 사진, 영상 촬영 외에 그래픽 디자인과 편집 일은 주로 제 작업실에서 하고 있어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인 상도동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일하는 공간이면서 가족과 가까운 지인, 친구들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에요. 제 취향을 가득 담아 만든 공간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쌓인 곳이라 의자 하나에도 애착이 가요. 가끔은 집보다도 아늑하고 편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웃음) 하지만 이동이 잦은 일을 하다 보니까 카페 같은 공간에서 리모트로 일하는 날이 많아요. 어딘가로 이동 중이거나 여행 중에 클라이언트의 급한 요청이 있을 때는 노트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는데, 문턱 낮은 카페를 찾게 되는 거 같아요.
최근 기억에 남는 리모트 워크 공간이 있나요?
얼마 전에 다녀온 캠핑장이요. 자연과 마주하면서 일하니까 여유로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다만 캠핑장에 도착해서 정확히 3시간 뒤에 느꼈어요.(웃음) 남편, 반려견과 셋이 다녀왔는데 텐트 하나 설치하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어요. 쉬운 줄 알았는데 마음만 앞서서 그런지 쉽지 않더라고요.
리모트로 일할 때 꼭 가지고 다니는 필수 아이템이 있나요?
필수로 가지고 다니는 게 조금 많아요.(웃음) 일단 노트북은 핸드폰처럼 항시 챙겨 다니는 것 같고요. 노트랑 펜, 카메라 2대, 헤드셋, 충전기를 항상 가지고 다녀요. 그래서 늘 가방이 무거운데 저는 그걸 좀 즐기는 거 같아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많을수록 좋아요”
제주로 워케이션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요. 제주에서 워케이션은 어떠셨어요?
제주는 여행과 웨딩 촬영으로 몇 번 왔는데 워케이션 목적으로는 처음이었어요. 먼저 일과 여행을 병행해야 하니 숙소 근처에 공유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숙소에서는 노트북을 펼치지 않고 온전히 쉼을 누리고 싶었거든요. 다행히도 제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워케이션 오피스 ‘오-피스 제주’가 있었어요. 일과 쉼의 온 앤 오프가 잘 안 되는 성격이라 다행이라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제주에서 나만 일하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뭔지 모를 위로가 됐어요.(웃음) 하루에 1만 5천 원을 지불하고 공유 사무실을 이용했어요. 공유 주방에서 점심으로 간단하게 먹을 토스트를 구우면서 문득 생각했어요. ‘제주에서 워케이션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래 사는 곳은 어딜까?’, ‘워케이션 기간동안 이 동네에서 뭐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유 작업실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뭔지 모를 동질감과 연대감 들었다고 해야 하나.(웃음)
머물렀던 제주 조천은 어떤 매력이 있었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 풍경, 일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눈앞에 가깝게 마주한 자연과 그 속에서 어우러져 일하는 모습,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길, 멀리 나가지 않아도 골목마다 있는 맛있는 식당과 카페 등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일상이 모두 매력적이었어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동네에서 머무는 것만으로 리프레시 되는 게 매력적이었죠.
제주를 워케이션 장소로 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 제주라서 정했어요.(웃음) 바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어요.
“여유롭게 일하며 부담 없이 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 워케이션 같아요”
제주에 일과 쉼 밸런스는 어떠셨어요?
제주에서 머무는 5일 동안 3일은 일하고, 2일은 쉬려 했는데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쉬는 날 클라이언트 연락이 더 자주 오더라고요.(웃음) 결국 마음먹은대로 못했지만 쉼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달라졌어요. 프리랜서가 되고 가장 좋았던 게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는 거였어요. 근데 3년 차 정도 되니까 눈 뜬 순간이 출근이고 잠드는 순간이 퇴근인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온종일 일 생각에 사로잡혀서 파묻혀 지낸 지난 일상을 되돌아보게 되었어요. 또 프리랜서가 된 후 휴가 가는 게 늘 부담스러웠어요. 무언가 쉴 때도 의미 있게 쉬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었거든요. 저한테는 이번 워케이션이 여유롭게 일하며 부담 없이 쉬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 같았어요.
나만의 출퇴근 리추얼이 있으세요?
출근 리추얼은 먼저 자리에 앉아서 달력을 펼쳐요. 오늘이 며칠인지 확인하고, 앞으로 뭐가 있는지, 뭘 해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면서 스케줄을 체크해요. 그러면 우선순위가 정해지는데 저는 그 우선순위를 TO-DO LIST로 정리해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놓고 일을 시작해요. 퇴근 리추얼은 계획한 TO-DO LIST를 보면서 스스로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요. 해야 할 일이 마무리되어야 퇴근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워케이션 떠나고 싶은 곳이 있을까요?
저는 어떤 특정 지역보다 주변 환경이 중요한 거 같아요. 먼저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찾고, 숙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유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나와 비슷하게 워케이션 하는 분들을 만나서 네트워킹하고 싶어요. 공유 주방에서 토스트를 구우며 문득 생각났던 질문들부터 던지면서요.(웃음)
유수진 님이 'pick'한 동네 공간
백리향 백반정식 한식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할 수 있는 곳이에요. 고등어 정식과 갈치구이를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