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동네작가1기/창작자들의 남해 1주일 살기

진 튜나리 보원 수민 진규 단도리
그래픽아트 사진 요리 위빙 기타 크리에이터
동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기간
05.25 - 06.01
남해에서 1주일간 살며 자기만의 창작활동을 할 동네작가 1기 6명이 남해의 바닷마을에서 1주일을 보냈습니다. 혼자서 일상을 보내기도 하며, 함께 모여 작업을 하고, 서로를 위한 공연과 클래스를 열어주고, 때로는 사진을 찍어주거나 요리를 했습니다. 남해에서의 일주일은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요.


"호젓하고 적막하지만 어딘가 넉넉함이 있는 곳 이었어요."
유휴하우스가 위치한 상주까지 오기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걸려 유휴하우스에 도착하고 동네를 둘러 본 느낌은 어떠셨나요?
보원: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5시간이 걸려 내려가는 동안 오랜만에 개강을 위해 대구로 가는 생각에 설레었어요. 유휴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었는데도 밤을 잊은 것 같은 새소리와 귀를 맴도는 바람소리가 들려 편안하고 안락했어요.
튜나리: 5시간을 운전하며 내려와서 도착한 은모래비치와 유휴하우스는 뭐랄까요.. 제가 살던 세계에서 다른 차원의 문을 지나온 것 같았어요. 지금 제 삶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꼈어요.
수민: 경주도 분명 같은 경상도인데 3시간을 운전해서 도착했어요. 남편이 운전해서 미안했는데, 가는 길 풍경을 보며 즐거워하는게 보여서 안심했죠.(웃음) 유휴하우스로 들어설 때 옹기종기 모여 계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계신 거 보면서 3년 전 경주로 이사왔을 때의 어르신들과 같은 시선을 느껴 3시간이지만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았어요.
진규: 저는 한적한 바닷마을은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남해의 해안도로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에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동차 엑셀을 누르던 다리의 힘도 풀게 되었습니다. 마치 앞으로 5일의 여정이 제 삶의 시간을 잠시 멈춰주는 경험이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말이죠.
진: 도시생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 중에 남해에서 일주일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설레여서 5시간이 즐거웠어요. 도착하고 만난 유휴하우스와 동네는 제가 딱 원하던 분위기를 풍겼어요. 호젓하고 적막하지만 어딘가 넉넉함이 있는 곳이었어요.
단도리: 저는 같은 경남에 있는 창원에서 왔지만 자가용 없이 상주를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첫날은 친구가 데려다 줘서 도착했어요. 밤늦게 도착해서 다음날이 되어서야 동네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여름을 맞이하는 상주는 조용히 삶을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과 해수욕장으로 나들이, 캠핑을 온 사람들의 활기가 어우러져 있었어요.

"서른 네살 어른에게 동화를 품게 해주었어요"
방에서 작업하거나, 거실로 나와 함께 작업하거나, 테라스로 나가 동네를 보며 작업했던 유휴하우스에서의 일상은 어떠셨나요?
보원 : 1층 맛 갈비의 위용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2층 유휴하우스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어요. 널찍한 주방과 높은 층고는 제가 살아보고 싶었던 집의 모습이라 너무 좋았고 내부를 나무 자재들로 마감하여 따뜻하고 햇살이 계속해서 집을 비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튜나리 :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노트북을 켜고 둘러앉아서 각자의 일을 하는 저와 다른 작가님들 모습을 보면서 작업은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웃음)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죠.
수민 : 저는 혼자 있는 걸 싫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눈치 보느라 진짜 원하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유휴하우스 방 안이나 테라스에서 작업할 때는 다른 시선은 느껴지지 않으면서 거실에 작가님들이 일하는 소리가 들려서 같이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최적의 작업 환경이었어요.
진규 : 시원한 바다 내음을 실은 바람이 들어오는 집은 바다를 좋아하는 제가 늘 꿈꾸던 곳이었어요. 유휴하우스는 기분 좋게 각자의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또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었어요. 넓고 쾌적한 주방과 아늑한 침실, 그리고 남해의 하늘을 바라보기 좋은 테라스는 서른네살 어른에게 동화를 품을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진 : 한 공간에서 각자의 작업을 하는 것이 퍽 신선했어요. 눈과 손은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옆에 계신 작가님들과 대화도 하고요. 가끔은 타인이 저와 같은 공간에서 뭘 느끼는지 묻는 걸 망설이게 되지만, 유휴에서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어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그걸 담는 거실의 하얀 벽, 다들 저처럼 생각이 말랑말랑해졌을 거라 믿어요.
단도리 : 함께하는 공간과 독립적인 공간이 아주 잘 구분되어 있다는 점도 좋았고, 그래서 소통이 필요한 작업, 집중을 해야하는 작업 모두 가능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또 방마다 책상, 침대, 옷걸이 무엇 하나 불필요함이 없이 잘 갖추어져 있는 섬세함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게다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 위치라, 해변 덕후인 저는 매우 만족했어요.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모티브로 스페인 요리를 하는, 보원작가
해주신 스페인오믈렛을 먹고 저는 순례길을 걸었던 기억이 나서 너무 좋았어요. 특별히 스페인요리를 선택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유럽 여행할 때 가장 사랑했던 나라가 바로 ‘스페인’이였어요. 바르셀로나 2층 버스에서 맞이하던 오렌지빛 햇살덕에 뜨겁고 찝찝한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태양을 피하기보다는 맞이하게 되면서 늘 마음속에 다시 가야 할 곳 1순위로 두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퇴사를 하게 되었고 코로나19로 스페인 계획이 무산 되면서 ‘줄리 앤 줄리아’처럼 스페인 요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죠.
작가들 중에 가장 오랜 시간 주방에 있으시면서 ‘요리하고 싶게 만드는’ 주방이라고 몇 차례나 말해주셨는데 주방의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유휴 하우스의 주방은 제가 따로 찍어서 나중에 집 인테리어 할 때 꼭 참고해야지라고 생각해 둘 정도로 매력 있는 주방이었습니다. 하얀색 타일과 밝은 색의 나무로 되어서 깨끗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주방이 일자형으로 길게 나있어서 동선과 공간 활용이 무척 좋았습니다. 특히 상부장을 없애고 철제 선반을 두어서 아기자기한 식자재나 도구를 두면 마치 인테리어 같은 효과를 보여서 좋았습니다. 최고의 장점은 주방이 거실만 한 크기였기 때문에 요리를 하는 내내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서 하루 종일 주방에 있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유휴하우스 주변에서 요리재료를 구하시다가 남해읍 시장에 가셔서 잔뜩 사오시기도 하셨는데, 남해에서 스페인 요리 혹은 다른 요리 재료를 구하는 것은 어떤 경험이였나요?
서울에서도 다른 나라의 식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남해 읍에서 구하기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있는 재료 또는 비슷한 재료로 바꾸면서 유휴하우스에 오려고 했던 초기 목적인 ‘얽매이지 말자’를 실천해보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제철인 호래기(꼴뚜기)를 생물로 만나게 되어서 토마토와 양파, 청양고추, 식초를 멋스럽게 버무려 호래기와 함께 먹으니 스페인식 회 무침 ‘셰비체’와 느낌이 아주 좋았고 남해의 맥주, 화이트 와인 그 어떤 것 하고도 페어링이 잘 되어서 뜻깊었습니다.


동네 작가들과 동네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사진기를 들고 온, 튜나리 작가
다양한 사진기를 들고 오셔서 동네를 기록하던 모습을 봤어요. 동네의 어떤 모습을 보셨나요?
우리가 늘 살아내고 있는 일상의 무대 위에서 잠시 내려와서 다른 차원의 문을 지나온 듯한 기분 이었습니다. 은모래 해변, 상주라는 공간이 저를 위한 테마파크 같았어요. 환상의 나라 xx랜드에 들어온 것처럼 그동안 잊고 있던 내면의 행복이나 감각들이 판타지 세계에서 샘솟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제가 마주한 동네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번 동네작가를 진행하는 동안 여러번 ‘내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였지’와 같은 말을 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혹시 어떤 의미였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좋아서 시작한 사진이 어느 순간에 수단이 되어 있더라고요. 돈을 벌어야 하는 수단, 내가 표현해야 하는 수단, 지식을 전달해야 하는 수단으로요. 좋아하는 일 하나를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 아홉 가지를 해야 된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순수히 사진을 찍는 것 자체에 대한 흥미를 많이 잃은 것 같습니다. 일이라서 지친 거 같아요. 그런데 남해에서는 그렇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거죠. 사진을 촬영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으니까요.
평소 작업모토이신 ‘기억을 아카이빙’ 한다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간단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는 나름의 방법입니다. 제가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참 많은데 그 이유가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지금이 되게 신기했거든요. 그 시절에 제가 살지 않았다고 해서 그때가 저한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유형으로든 무형으로든 흔적을 남기거든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시점부터 기억은 생물처럼 계속 변화해요.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살도 찌고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에 소멸해 버리기도 하고 그러거든요.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작업을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동네의 다양한 모습과 아이들의 바람을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진 작가
상주은모래비치를 배경으로 작업하신 그래픽에서 눈에 띄었던 건 고래였어요. 고래를 가져오신 큰 이유가 있으실까요?
유휴하우스에 오기 전, 상주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고래를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는 10대를 진주에서 보내며 부산이나 통영 바다로 자주 놀러 갔었어요. 모래사장에 앉아서 멀리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쓸려오는 건 작은 조개껍질이나 해초들뿐인데, 과연 고래가 진짜 존재하긴 하나? ‘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고래는 비인간 인격체로, 지능이 높아서 인간에 준하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동물이죠. 그런 고래가 깊은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걸 떠올리면, 어딘가 의뭉스러우면서 동시에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푸짐한 덩치에 걸맞게 한없는 포용력으로 안아줄 것 같은데, 장난기가 있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거죠. 바다를 보며 자라는 동네 아이들이 맘껏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비밀스러운 보호자 고래, 그래서 우린 모두 고래를 실제로 보지 못한 게 아닐까요.
취미이신 롱보드를 들고 오셔서 동네를 돌아다니셨는데, 보드에 고프로를 장착해서 동네 영상을 찍고 그 위에 그래픽을 입힌 작업을 했는데, 혹시 이와 같은 작업을 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요즘엔 직접 찍은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들을 하고 있어요. 제 작업들은 제 균형감각의 이정표에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균형감각이죠. 평소에 걷거나 보드를 타면서도 눈에 보이는 장면 위로 이것저것 상상을 덧대요. 이런 사소한 일탈(?)이 정말 재밌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모든 작업들은 결국 그날 즐겁기 위해 상상한 것들을 현실 위에 남긴 거예요. 스스로 이전 작업들을 볼 때마다, 그날은 생각이 어디까지 흘렀는지 알 수 있어요. 동시에 그 흐름을 상기하며 다음 작업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하고요.


동네작가들에게 위빙 클래스를 열어주기 위해 경주에서 재료를 가져온, 수민 작가
방에서 위빙을 하시기도 하고, 테라스로 나오셔서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리는 모습을 보았어요. 쉬는 방이 일터가 되기도 하고, 조금 나가 테라스가 또 일터가 되기도 하는 일과 쉼의 경계가 없을 수 있는 유휴하우스에서 작업하는 일상은 어떠셨나요?
유휴하우스에서는 커다란 창 덕분에 햇살이 가득 들어와서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되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평소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했어요. 오전에 일어나 여기저기 실컷 구경해도 오후 서너시쯤이라, 방에서 쉬다가 슬쩍 바닷가를 걷고 와서 그림도 그리고 위빙도 하곤 했죠. 침대에 앉아있다가 심심하니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좀 전에 걷던 길을 다시 떠올려보게 되고, 떠올리니 그리고 싶어지고…쉬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일을 하게 되었어요. 남해에서 받은 감동이 가장 인상적일 때 바로 손을 움직이는 거니까 집중도 잘 되었고요.


연주와 쉼을 위해 남해에 와 클래식기타 연주회를 열어준, 진규 님
유휴하우스에 있으신 동안에도 매일 기타 연주 연습을 하셨어요. 일전에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었는데, 연습을 매일 하시는 이유를 다시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연습을 놓지 않는 것이 연주가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일입니다. 저의 정체성은 연주가이고 연주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연습이기 때문에 연습은 연주가의 삶에 근간이 되는 뿌리의 역할을 해줍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예방하고 치유해 주는 것은 일상이 흔들리지 않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저에게 연습은 일상이기 때문에 항상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유휴하우스에서 주말을 혼자 보내며 동네의 모습을 담은, 단도리 작가
동네작가 중에 유일하게 남해군에서 주말을 지내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냈던 것 같아요. 화소반에서 혼술을 하시기도 하시고 드론을 통해 동네를 찍기도 했는데 혼자서 보내시는 일상은 어떠셨나요?
앞선 질문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저는 혼자 여행이 익숙해서, 혼자인 것 자체는 크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혼자서 뚜벅이 여행을 다니더라도,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면 이곳저곳 이동을 하기 마련인데, 상주에서는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유휴하우스에서의 시간은 제 스스로를 강제로 고립시킨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사실은 그래서 더 좋은 시간이었어요. 부담 없이 유휴하우스와 그 인근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습니다.
은모래비치 주변의 혼술, 낮술 하기 좋은 가게들에서 보내는 시간들도 좋았어요. 특히 화소반의 뱅쇼!는 정말 맛있었는데… 너무 덥지 않다면 꼭 야외 자리를 추천해요. 이태리회관은 메뉴 구성이나 음식 맛도 좋았지만 1인 손님인 저에게 기꺼이 창가의 4인 테이블을 내어주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메뉴를 내어주실 때마다 “천천히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친절과 배려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