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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일상 문화 안내서 2화. 자네 성씨가 어떻게 되나?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일상 문화 안내서
권진영
생활인
동네
남해 두모마을
안타깝게도 우리 부부는 둘 다 손 씨도, 정 씨도, 박 씨도, 김 씨도 아니다. 그래도 이 낯선 집성촌에 잘 적응하며 네 번째 계절을 보내고 있다.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이주한 뒤,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면 꼭 받는 질문이 있었다. “자네 성씨는 어떻게 되나?” 마을에 새로 이사 왔다고 인사를 드리면, “어디서 왔냐?”는 첫 번째 질문 다음은 언제나 나의 성을 묻는 질문이었다. 정작 성 뒤에 붙는 이름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름보다는 ‘성’이 중요한 듯 보였다. 마을에 사시는 어느 어르신을 만나든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것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나중에서야 마을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 나의 성씨를 물으셨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한 개의 마을이면서도 다시 들여다보면 4개의 마을, 그러니까 4개의 서로 다른 성씨 부락으로 구성된 집성촌이었던 것이다. 마을 앞 바다를 바라보고 왼쪽 편으로 옹기종기 길게 줄지어 모여 있는 집들은 ‘정’씨 촌, 그 반대 오른쪽 편은 ‘손’씨 촌이다. 바다를 등지고 금산을 바라보며 왼쪽 편에 모여 있는 집들은 ‘박’씨 촌, 반대편은 ‘김’씨 촌이다. 우리 부부는 마을의 폐교가 있는 박 촌에 얼마간 임시로 머물다가, 지금은 김 촌에 집을 얻어서 지내고 있는 셈이다.


이장님께 여쭈어보니, 마을이 지금과 같은 집성촌의 형태를 갖추게 된 건 무려 40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을 떠나고 새로이 들어오는 사람들이 섞이고 섞여, 김 촌에 정씨도 살고, 손 촌에 이 씨도 산다지만, 그래도 집성촌의 문화는 강하게 마을의 일상 문화로 남아 있는 듯하다. 마을 어르신들 틈에서 귀동냥을 하다보면, ‘박 씨가 아니면, 박 촌에는 집을 못 얻는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마을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게 다른 건물이나 지표가 될 만한 것들이 없다보니, 4개의 구분되는 부락은 마을 주민들에게 표지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저기 손 촌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 집 근처’라든지, ‘저기 김 촌 건너편 산’이라든지. 4개 부락은 마을의 공동 일을 분담하는 가장 요긴한 단위이기도 하다. 2년마다 손 촌, 김 촌, 박 촌, 정 촌 사람들이 부녀회장을 돌아가면서 맡는다고도 하는데, 이번엔 정 촌이 부녀회장을 맡아야하는 차례라고.  

손 촌, 정 촌, 김 촌, 박 촌을 모두 돌며 이사 떡을 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걸어서 한 바퀴 걸어도 겨우 30분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데, 또 다시 4개의 부락으로 나눠진다는 것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새로 이사를 들어온 집에 먼저 살던 분이 이사를 나가시면서, 원래 살던 김 촌에서 정 촌으로 가게 된 것을 매우 아쉬워하셨다. 같은 마을인데다 걸으면 십 여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뿐인데도 꼭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 심정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마을에서 살아가는 시간들이 조금씩 쌓여갈수록, 이사를 떠나며 남긴 그 분의 아쉬움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작은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사 떡을 집집마다 빠짐없이 돌려보니 마을 회관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게 뻗어 늘어선 마을은 꽤나 크게 느껴졌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누빌 수 있는 도시와 달리 이곳 마을에서는 생활의 반경이 넓지 않다보니, 같은 마을 안에서도 자기가 사는 부락이 아닌 다른 부락을 찾을 일도 그리 많지 않다. 다만, 마을의 중요한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땐 4개의 부락에 흩어져 있는 어르신들을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집 앞에 직접 그려 넣은 명패를 두었다. 명패 덕분에, 마을 어르신들이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우리 부부는 둘 다 손 씨도, 정 씨도, 박 씨도, 김 씨도 아니다. 그래도 이 낯선 집성촌에 잘 적응하며 네 번째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마을 어르신들은 내게 성을 묻지 않으신다. 이름을 외우시고선, “진영아!”하고서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나도 마찬가지다. 마을 어르신들은 나에게 모두 똑같이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였는데, 이제는 자주 얼굴을 맞댄 분이라면 그 앞에 석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같은 성은 아니지만,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웃이 되었다. (3화에서 계속됩니다.)

/인터뷰/

 

여성 / 1970년생 / 1999년 남해로 시집와서, 현재 상주면에 거주중

 

Q1. 처음 시집을 오셨을 때, 집성촌 마을이 낯설지는 않으셨나요?

그렇진 않았어. 내가 원래 살던 고향 마을도 진주 강 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니까. 이 마을로 시집을 오고 나서는, 손 촌 며느리가 되었지. 내가 시집을 왔을 때도 어르신들이 성씨를 물어대셨어. 그런데 지금은 좀 나아진 거야. 옛날에는 부락끼리 더 구분이 강했어. 들으니, 시아버님이 원래 살던 산 쪽에서 지금의 집터로 내려오시면서 도랑을 내셨다고 하더라고. 박 촌과 손 촌의 경계를 만드신다고. 옛날에는 그만큼 서로 성씨를 구분하는 게 강했던 거지. 

 

Q2. 4개 성씨 촌중에 제일 규모가 큰 곳은 어디에요?

지금은 박 촌이 제일 크지. 그런데 옛날에는 내가 시집온 손 촌이 더 컸어. 그런데 마을 어르신들이 나이를 먹고 하나둘씩 돌아가시고, 도시에 나간 자식들이 고향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서,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줄고, 각 부락의 규모도 달라져온 거지. 

 

Q3. 각 부락 사람들이 모여서 특별히 하는 게 있나요?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각자 시제를 지냈지. 조상한테 지내는 문중 제사 같은 거야. 집집마다 회비를 내서 제사 음식을 마련했는데, 누구 씨네 시제에는 그릇이 몇 개더라, 누구 씨네 시제에는 사람이 몇이 모였더라, 하면서 서로 은근히 경쟁하고, 견제하는 게 있었지. 서로  힘자랑 하는 거지.

 

Q4. 지금도 시제를 지내나요?

김 촌은 아직도 지내. 그런데 나머지 세 촌, 손 촌, 정촌, 박 촌은 이제 시제를 안 해. 김 촌이 규모가 제일 작은데도, 계속 제사를 지내고 있지. 박 촌에서 제일 먼저 시제가 없어지고, 그다음 손 촌에서, 정 촌에서 없앴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지. 자식들이 출가하고 나서 제사를 지내러 오지도 않고, 마을에 남은 어르신들은 이제 나이가 많아 제사를 챙길 힘이 없으니까. 

 

Q5. 옛날과 달라진 것이 또 없나요?

없어. 옛날하고 똑같아. 내가 시집오고서 우리 마을은 딱 두 가지만 바뀌었어. 하나는 길, 다른 하나는 지붕. 옛날 흙길이던 게 지금처럼 새로 닦인 길이 되었고, 전부 쓰레트 지붕이던 것을 걷어내고 새로 싹 바꿔 달았지. 그 둘 말고는 모두 그대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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