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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장치 없는 남면의 젊은 창작자들, 해변의 카카카
(해변의) 카레, 카레, 카레
하성민 정소형 최규성
크리에이티브
동네
남해 선구마을 (무지개마을 이사 예정)
거주지
몽돌해변 5M 앞 1층집
에어백 하나 없는 다마스(자동차)가
자신들과 닮았다고 웃는 '카카카'의 영상담당
최규성씨는 남해읍에서 설렁탕집 서빙을 한다.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짐싸고 내려왔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남해로 내려왔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내려오게 되었나요?

하)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 책 모임중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이 남해 출신이었어요. 마침 그 친구가 다큐멘터리 촬영 제작 지원을 받게 되었어요. 그때 다큐 모임에 참여했는데 거기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열 댓 명이 있었어요. 다큐멘터리 주제가 청년들이 서울에서 지역으로 내려가는 과정을 찍는 거라서 그 친구들하고 남해에 내려가서 이런저런 인터뷰하러 다녔죠. 그때가 2017년 12월이었는데 그 후에도 남해에 서너 번 더 내려와서 놀았어요. (웃음) 저는 그때가 퇴사한 시점이기도 해서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짐 싸고 내려왔죠. 다른 친구들은 서울에 직장이 있는 상태여서 왔다 갔다 하다가 내려왔죠. 반년 정도는 남해에서 저 혼자였을 때가 많았어요.

남해에 정착하실 때 지원정책이 없었다고 들었어요.

하) 당시에 2인 이상의 혈연관계만 정착지원이 가능해서 지원은 못 받았어요. 더 찾아보면 있었겠지만 크게 찾아보진 않았어요. 서울에서 사회적 경제 쪽 일을 하면서 저희가 공공과의 일에서 엄청나게 지쳐있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내려올 때부터 공공기관과 엮이지 말자는 지향점도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자립할 방법을 많이 고민했죠. 근데 지금은 지원이 굉장히 절실해요. 먹고살기 힘들어서. (웃음)

지금 사는 집은 어떻게 구했어요?

하) 처음에는 부동산을 통해서 다랭이마을에 있는 집을 알아봤어요. 근데, 젊은 애들이 집을 구해서 그런지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더라고요. 거기서 마음이 좀 상했어요. 그래서 남해군청 홈페이지에 집을 구한다고 올렸는데 연락이 와서 왔더니, 마음에 무척 드는 거예요. 바다도 바로 앞에 있고, 방 3개, 짐 넣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바로 계약했어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서 자원들이 풍부한 것 같아요"

남해에 여행 왔을 때와 주민이 되었을 때의 느낌에 차이가 있었나요?

하) 처음 내려왔을 때 따뜻하고 좋았어요. 친구들도 있었고, 꼭 남해가 아니었어도 즐거웠을 시기였죠. 집을 구하고 완전히 내려왔을 때, 반년 정도는 혼자서 지냈어요. 창작활동도 하고 친구들 오면 놀기도 하다가 문화와 교육 관련 지원 사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인프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근데 남해가 가진 문화적 자원들이 풍부하더라고요. 되려,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서 자원들이 풍부한 것 같아요.

(정소형씨가 운전면허 합격지를 들고 인터뷰에 참여했다)

서울과 비교했을 때 생활 인프라에 대한 불편함이 크게 없었나 봐요?

하) 네 인프라에 대한 갈증은 크진 않았어요. 읍에 가면 24시 마트도 있고 근처에 맘스터치도 있거든요. 그리고 필요하면 한 번씩 서울에 올라가면 전시 보고 연극 보고 하면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왔어요. 지금은 서울까지 왕복하면 8만원이 들어서 못 가고 있지만..

정) 생활이 엄청 다르지는 않아요. 주로 음식을 해 먹지만, 피자도 시켜 먹고 어제는 족발도 시켜 먹었어요. (웃음) 그리고 읍에 가면 영화가 6000원이에요. 영화 보고 노래방도 가고 서울에서 노는 거랑 똑같이 노네요. (웃음) 아 근데 있어요. 집이 잔고장이 나면 직접 수리해야 해요.

하) 맞아요. 한동안 수도가 계속 터져서 엑셀 파이프 잘라서 붙이고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서울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집수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집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나요? 듣기로는 태풍이 오면 위험하다고 하던데 (웃음)

하) 진짜 태풍 오니까 바닷물이 집 앞까지 오더라고요.(웃음)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고 찰랑찰랑하는 정도였어요. 거주 안정에 대한 불안을 말씀하시는 거죠? 여기서 사는 동안은 거의 없었어요. 집세가 오를 걱정은 당연히 없었고 집주인도 프리해서 집도 많이 고쳐서 썼어요.

남해에서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하) 여기 송전탑 위쪽으로 가면 경치가 너무 좋아요. 노을 질 때 가면 여수도 다 보이고 정말 이뻐요.

정) 저기 읍 근처에 가면 쇠섬이 있어요. 섬이 이어져 있는데 산책하기 너무 좋아요. 그리고 대정에 있는 돌창고프로젝트는 진짜 이뻐요. 꼭 한번 가보세요.

"배수진치면서 사는 삶 이런 느낌이라서 지었던 거예요"

‘해변의 카카카’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건가요?

하) 처음에 이 집의 창고에서 카레집을 했었거든요. 카레의 앞 글자를 따서 ‘카카카’로 지었어요. 그래서 저희 상호는 ‘카카카’에요. 근데, 카레집을 할 때 앞에 바다도 있어서 ‘해변의 카카카’로 지었어요. 지금은 많이 알려진 ‘해변의 카카카’로 활동을 해요.

작년(2019년)에 무인도 영화제를 처음 개최했는데 어떤 영화제인가요?

하) 저희가 남해에 내려와서 ‘지방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방법이 하나는 책이고 하나는 영화제였거든요.  지방소멸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포럼 형태의 영화제였는데, 흥행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공장공장과 팜프라도 와서 참여했어요.

어디서 진행했던 거예요?

하) 남면 초등학교에서 진행했었어요. 개막 때 비가 엄청 쏟아지기도 했고 접근할 수 있는 교통편이 너무 열악해서 읍에서 오기에는 힘들더라고요. 어쩌면 무인도에 어울리는 인원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올해는 예산에 맞게 규모를 줄여서 진행할 것 같아요.

정) 지원을 받지 못하면 저희끼리만 할 수도.. 그때 오세요!(웃음)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지방소멸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나요?

하) 저희는 지방소멸을 해결하자는 입장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아요. 지방에 계신 분들은 사람들이 더 많이 유입되기를 원하고 귀촌하신 분들은 또 오히려 개발이 안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어느 입장도 아니에요.(사실 저희 안에서도 입장이 나뉘거든요) 지방소멸을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서 아카이빙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다만, 그걸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을 해요.

‘다마쓰으’라는  아트워크 모음집을 제작하시던데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 인생에 안전장치 없는 애들이 모여서 만드는 생계형 저작물이라고 소개해요. 자동차 중에 다마스가 안전장치가 없는 차라고 해요. 그래서 늘 배수진 치면서 사는 삶이라는 느낌으로 이름을 지었던 거예요.

하)  글, 그림, 영화를 창작하는 열 댓 명의 친구들이 이걸로 돈을 벌어서 월세에 보태려고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주간 다마스라 해서 매주 인터넷에 올렸었는데 중간에 힘들어서 중단하고 격월간으로 바뀌었죠.

"그게 '우리'로 넘어가면 어떻게 살아 남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유튜브를 준비하고 있으시다고 들었어요. 어떤 것을 담고 싶으세요? 

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영상에 담을 것 같아요. 일상 대화와 같은 것을 만들 예정이고 작업을 해나가면서 성격을 규정해나갈 것 같아요.

하) 이것도 아카이브 성격이 커요. 카카카 뭐 하는 애들이야? 하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들어요. 명료하게 답할 필요는 없지만,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통해서 많이들 찾아보시니까 영상으로 설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것을 정리하면서 성장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해변의 카카카는 성장을 지향하나요?

하) 저희가 모두 창작자이다 보니 개인으로는 잘하겠지만, ‘우리’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남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하는 기획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물론, 우리가 재미있어야 하는 게 우선이라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면서 성장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귀촌을 꿈꾸는 또래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조언을 해주시겠어요?

정) 혼자서 내려오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지인들을 꾀어서 내려오는 걸 추천해드리고 사실, 망설이면 못 오게 돼요. 저도 ‘너 내려갔어? 나도 내려갈게’ 하고 바로 내려왔거든요. 막상 저지르고 보면 어떻게든 살 게 되더라고요.

하) 저희가 처음에 내려왔을 때, 돌창고 프로젝트 최승용 대표님께서 ‘일단 내려와서 발을 딛고 있어야 일이 시작된다’라고 하셨던 말이 많이 공감되었어요. 

동네 위치
에디터. 김경환 l 사진. 문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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