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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하나 없는 마을에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권진영, 이준민 부부
닉네임은 나무
권진영 이준민
부부
동네
남해 두모마을
거주지
귀농인의 집
남해에서 직접 만든 찻잔을 들며 말했다.
이 잔을 보면 '나무'구나 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공간이 살아 있게끔 계속 확산시키는 일을 했죠"

서울에서 커뮤니티 매니저로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을 주로 하는 건가요?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직업이 생소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공간을 계속 살아있게 만드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주로 저는 공간에 알맞은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했어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공간에 초대하며, 그 공간이 본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동력을 만들어내는 일을 했죠.

휴가차 남해로 여행 왔을 때,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음악을 듣지 않게 되었다는 글을 블로그에서 봤어요

서울과 남해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어요. 그 당시 휴가자의 입장에서 마음의 차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평소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곤 했는데, 남해를 여행하는 동안은 음악을 듣지 않게 되더라고요. 대신 풀벌레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에 빠져들었어요. 도시에 있을 땐 사람이든, 건물이든, 해야 할 일이든, 무엇이든 항상 넘쳐나잖아요. 그래서 늘 외부의 넘치는 자극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급급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로 붐비는 출퇴근길에 크게 노래를 틀어놓고 양쪽 귀에 이어폰을 질끈 꽂고 다닌 것도 일종의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던 거죠. 그런데도 늘 어딘가 비어있는 것 같고, 끊임없이 채워야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저절로 채워지는 것들이 많아요. 특히 자연이 주는 것들이 많죠.

감각이 엄청 풍부해지겠어요 

그런 것 같아요. 매일 매일 산의 색깔, 바람의 온도, 풀의 길이, 바다의 밀물과 썰물, 그런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져요. 지금은 예전과 달리 몸과 마음이 바깥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것 같아요. 그게 자연이든, 사람이든, 삶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든, 외면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수용하려는 감각이 더 커져가는 것 같아요.

"직업으로서의 일은 아니지만 저는 일이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남해군에서 두모마을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남해에 내려오게 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어요. 오랫동안 남편과 함께 고민해온 지역 이주를 실행하기 위해 마침 동반 퇴사를 했을 시점에, 우연히 팜프라촌 입주민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남해 두모마을의 폐교에서 함께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생활할 사람들을 모집한다고 하여서, 큰 고민 없이 곧바로 신청을 했죠. 그렇게 두모마을에서 남해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살아보니 두모마을은 계속 살고 싶을 만큼 좋은 곳이에요. 팜프라촌 1기 입주 기간은 (19년도) 11월 30일에 마무리되어서 새로 집을 구해야했는데, 마침 두모마을에 있는 귀농인의 집에 새로운 입주자로 선정되었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 마을에 살고 있어요.

남해로 오고 나서 도시에 있었던 적이 그립거나 그러진 않았나요 

네! 전혀(웃음) 제가 원해서 떠나온 것이고,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해보고 있으니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아! 떠나온 뒤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이 너무 추워서 따뜻한 집은 그립네요.

남해에서의 진영님과 준민님의 일터가 궁금해요

기존의 일터라는 개념과는 되게 다른 것 같아요. 예전처럼 회사에 고용되어 고정된 일을 하거나 월급을 받는 형태가 아니니까요. 저는 외부 매체에 투고할 글을 쓰기도 하고, 남편은 원래 해왔던 일을 토대로 강연을 준비하기도 해요. 그럴 땐 집이 일터가 되죠. 때론 일손을 도와 시금치 밭이나 고사리 밭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땐 마을이 제 일터가 되요. 집, 밭, 바다, 마을 곳곳을 일터 삼아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어요.

일이 더 많아지셨네요(웃음) 

(웃음) 그게 직업으로서의 일은 아니지만 저는 당연히 일이라고 부르고 있거든요.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동력이 투입되는 일거리이고, 어떤 가치이든 담아내고자 하니까요. 그게 언젠가는 돈을 벌 수 있는 일로도 연결될 수 있겠죠. 한 가지 일만 하는 것보단,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지금이 좋아요. 그만큼 더 많은 재미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단 해보고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럴려면은 되게 작은 표현과 작은 행동에 집중할 수 밖에 없더라고요"

나무라는 별명은 의미가 있나요?

의미는 없어요.(웃음) 제가 요즘 ‘의미 부여하지 않기’ 연습을 하고 있어요.(의미론자여서..) 이전에는 밀레라는 닉네임을 썼어요.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별명이었는데, 삶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가 변하면서 그에 맞게 닉네임도 새로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퍼뜩 떠오른 게 ‘나무’였어요. ‘나무’가 저에게는 그만큼 편한 단어인 거겠죠. 나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지금 주로 듣는 노래가 있나요?

저는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이 들어요. 하루에 한 시간씩 작은 방에서 운동을 할 땐 요가 명상 음악을 많이 듣고, 집에서 요리를 하거나 일을 할 땐 유튜브로 재즈를 찾아서 틀어놓고요. 최근에는 가수 강태구 앨범을 자주 듣고 있어요.

유튜브는 주로 음악 들을 때 많이 쓰시나요?

아니요. 이것저것 새로운 영상을 찾아서 많이 봐요. 관심 있는 주제에 관련된 건 죄다 찾아보는 편이에요. 요즘은 육아를 하는 부부의 브이로그를 찾아보며 아이가 생기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고, 집에서 직접 빵을 만들어 먹으려고 홈베이킹 관련 영상도 찾아서 똑같이 따라해 보기도 해요.

루시드 폴의 ‘바람 같은 노래’ 한 구절 처럼 살고 싶으시다고 들었어요 

‘내가 사는 만큼만 노래하고 싶어. 노래만큼만 살아야겠다 싶어’라는 구절이 있는데, 제 삶의 모토에요. 쉽게 말하면 언행일치라고도 할 수 있고, 거창하고 화려할 것 없이 그저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으로만 살아가자는 의미이기도 해요. 루시드 폴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그 사람이 쓴 노래를 들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거창한 설명이나 화려한 포장없이, 누군가 제가 만든 컵의 모양을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살고 있는 집, 쓰고 있는 물건, 하고 있는 일에 솔직한 제 모습이 있는 그대로 투영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꾸 큰 이야기보다는 작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 같은 거에 말이에요. 농사나 집짓기에 관심을 갖고 귀촌을 하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고요.

"당산나무 아래 혼자 많이 누워있었어요"

장은 주로 어디서 보세요?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 번 정도 읍내에서 보고 있어요. 일주일에 둘이서 2만원이라고 예산을 정해놓고 장을 보기도 하고,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먹고 싶은 데로 다 사 오기도 해요. 저희 부부만의 실험인 거죠. 우리에게 맞는 적정한 삶의 규모를 찾는 실험이요.

두모마을에서의 커뮤니티는 어떠세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사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진짜 ‘마을’에 산다는 것을 체감하며 생활하는 것도 처음이고요. 이곳에서는 여전히 마을 제사를 지내고, 집성촌이라서 서로 친인척 관계인 경우도 많더라고요. 저에게는 완전히 새롭게 접하는 커뮤니티인 셈이죠. 그래도 저는 지금 마을 생활이 아주 만족스러워요. 길을 가다가 인사를 건넬 누군가가 있다는 게 좋아요. “어디 가냐고” 항상 물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아요.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 마을에서 오래도록 지켜오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어르신들 만나 이야기 나누다보면 재미있어요. 이 마을의 역사, 옆집 할아버지의 역사, 내가 매일 마주하던 것에 담긴 몰랐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두모마을에서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요?

22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있어요.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죠. 팜프라촌에서 생활을 할 때 입주민들이 함께 평상을 만들어서 나무 아래 두었는데, 그곳이 제가 마을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에요. 당산나무 아래 혼자 많이 누워있었어요. 가끔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당산 나무 아래 누워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들도 편안해지더라고요. 마음 속 불안이 잠잠해지고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주는 위로가 커요.

기름보일러라서 주유소 기름값을 처음 맞이했을 때 28만원이 나왔다고 들었어요 그때 느낌이 어땠나요

충격이었죠. “적게 벌고 적게 쓰려고 시골에 왔는데, 그게 아니구나. 시골에 살려면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우리 부부가 1주일 식비를 2만원으로 줄이며 생활비를 아껴보려 노력해봤자, 기름 한 번 넣으면 소용없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고, 불안해졌죠. 현실을 자각하고 정신 차리라는 신호 같았어요. 그래도 그 감정에 휩싸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단지 돈을 따지면, 매달 들어오는 월급까지 포기해가며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가 없으니까요.

남해에서 추천해 주고 싶은 공간이나 사람이 있나요?

유명한 금산 보리암을 추천하고 싶고, 제가 좋아하는 앵강만도 추천하고 싶어요. 지족 해안도로도 드라이브하기 좋아요. 제가 살고 있는 두모마을이 추천 1순위이기도 하고요. 근데 제가 추천하는 곳들은 이미 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금방 나오는 것들이에요. 남해에는 비어있는 곳이 많아요. 그 비어있는 곳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발견해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예쁜 조개가 많은 곳. 노을보기 좋은 곳. 산과 바다가 함께 보이는 곳 등등. 저도 그렇게 저만의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거의 공생관계인 것 같아요"

‘바다소포’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자려고 누워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시작된 일이에요. 야밤에 일어나 곧바로 신청서를 만들어서 시작해버렸거든요.(웃음) 남해에 여행을 왔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는 한 친구의 말이 계기가 되었어요. 남해를 그리워하는 그 친구에게 남해를 담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 친구처럼, 남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바다소포’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 한 권과 함께 남해의 향과 멋, 맛을 담은 작은 선물을 함께 골라 보내드리는데, 아직까지는 대부분 신청자가 제 지인들이에요.(웃음)

최근에 부부의 영수증 콘텐츠가 생겼는데 그 기름보일러 때문인가요? 

그 사건(웃음)이 컸죠. 그 사건을 계기로 가계부를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장 기름값을 벌어야겠다고 성급하게 일자리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마주해보자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지출하는 영수증으로 콘텐츠를 만들게 되었고요. 실제로 귀촌 이후에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게 되는지 실질적인 부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한겨레21에 격주로 부부의 영수증을 연재하며, 영수증 속 솔직한 시골 살이의 풍경을 귀촌을 고민하는 분들께 전하고 있어요.

팜프라에서 함께 일하시는데 역할이 있을까요?

도와주는 존재?(웃음) 한 마을에 살다보니, 팜프라 친구들하고는 거의 공생관계인 것 같아요. 밥도 자주 같이 먹고, 마을 일을 같이 하기도 해요. 팜프라 친구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과 저희 부부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많이 닮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팜프라가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 받는 게 많죠. 저희 부부가 알음알음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이 팜프라가 만들어내는 일거리 덕분이기도 하고요(웃음). 올해에도 팜프라 친구들하고 이것저것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돼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으신가요?

많아요! (웃음) 회사에서 하던 일은 하지 말아야지 했어요. 그동안 늘 해왔던 일보다는 해보지 않은 일에 좀 더 집중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남해에 살면서도 어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 좋을지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동안 그저 회사에서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해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일이기 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어요. 제가 살아가는 이야기, 이곳 남해에서 마주하는 이야기,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등 무엇이든 꾸준히 수집하고, 기록하고,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어요. 그건 제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귀촌을 생각하거나 또 다른 지역에서 한 달이든 장기로 내려와서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집에 놀러오시다!(남해사투리) 저랑 남편도 낯선 지역에 이주한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이 컸어요. 그래서 귀촌에 관련된 강연이나 책을 찾아보고, 먼저 다른 지역에 이주를 하여 살고 있는 분들을 만나보기도 했어요.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이미 먼저 이주하여 살아가고 있는 분과의 만남이었던 것 같아요. 묵묵히 본인이 바라는 방식으로 낯선 지역에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용기 있게, 흘러가는대로 가보자고 마음먹을 수 있게 해주죠. 그런 맥락에서 저희 부부의 이야기가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지역살이를 고민하고 있다면 저희 집 문을 언제나 두드려주셔도 좋아요.

동네 위치
에디터. 김경환 l 사진. 문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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